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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간 매일 카톡에 글 올리기를 해본 소감을 물었다.
글이 자꾸 짧게 써진다고 한다. “글을 길게 써야하나요?”
“길게 쓰면 좋죠” 내가 대답했더니 누군가 “난 길게 쓰면 자꾸 잡소리가 들어가.”라고 말한다.
다 같이 웃음.
어조를 통일하는 게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떤 글을 쓸 때는 '했다'로 끝내게 되고 어떤 글은 '했습니다'로 말하게 된단다.
글에 따라 다르게 쓰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
일단 지금은 마음 가는 대로 쓰고 나중에 책 전체는 통일하자고 했다.
“‘했다’는 어감이 세지는 느낌이고 ‘했습니다’는 부드러운 느낌이에요.”
어떤 사람은 전자가 편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후자가 편할 수도 있다.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글의 내용도 달라진다.
그렇다고 책에 두 가지를 섞어 쓸 수는 없다.
“나만 외롭고, 나만 잠수타고 그런 줄 알았어요. 카톡방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보니까 위안이 되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반응이다.
이런 느낌을 확신했다. 공감과 위로 나누기.
“글쓰기 때문에 반찬이 없어도 신경이 안 쓰여요. 에잇, 몰라, 하게 되고.”
하하. 그렇지, 그렇지.
점점 글쓰기에 빠져든다는 느낌이 든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건데, 당연하다. 그래야 한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하게 쓰세요, 라고 말하지 못한다. 부담과 두려움, 고민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으니까. 나도 그렇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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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간에는 ‘사진 보고 글쓰기’와 ‘문장 증식시키기’를 연습했다.
전자는 강운구의 사진에 대해 쓴 황현산 선생님의 글(‘밤이 선생이다’에 실린)을 참고했고
후자는 마츠오카 세이고의 ‘지식의 편집’에서 가져왔다.
* 사진 보고 글쓰기
1. 딸 여섯이랑 엄마, 이렇게 일곱 명이서 미니버스 빌려 여행을 했어요. 재작년에 강원도로 2박3일동안. 그때 찍은 사진 중 한 장이에요.
2.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적어봤어요. 병원생활 마치고 2주 만에 진찰 받으러 갔을 때입니다.
생각이 많은 듯했다. 턱을 괸 손에는 두려움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느 곳을 바라보는지 모를 눈은 초점이 없었지만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죽음을 넘나들던 지난 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기적입니다, 라고 말할 때는 언제고 상태가 지난번보다 좋지 않습니다, 2주 뒤에 다시 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젊은 의사의 입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온 힘을 다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지만 힘이 다 빠져나간 듯 지탱하기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기분 전환을 하려고 밝은 옷을 입었지만 팔뚝에 새겨진 주삿바늘의 흔적들이 자꾸만 나락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이 나올지 도망치고 싶기만 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날들의 기억이 자꾸만 손을 내민다. 한때는 그냥 고통 없이 죽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손주 결혼하는 것도 보고 싶고, 증손자도 안아보고 싶다. 자꾸만 시선이 팔뚝에 머문다. 다시 입원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악몽을 꾸던 그때의 흔적들은 아물지 않은 채 계속 되새김질을 시킨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이것도 거짓일지 모른다.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일지 모른다.
3. 담벼락에 붙어 앉아 수다 떠는 모습. 강원도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갔을 때예요.
'두 여자'
할머니가 아니고 여자이고 싶다. 강원도에 내려가 있는 친구에게 5월의 빛을 가지러 갔다. 논두렁길 걸으면서 개구리소리도 반가워하고 냇둑길에 서서 물수제비 놀이도 하다 지친 다음날의 한낮. 어느새 강렬해진 햇빛에 쫓겨 담벼락에 붙어 앉았다. 그럼에도 빛은 쫓아와서 친구의 한쪽을 나누고 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널브러진 것이 친구의 편안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본래의 제 모양대로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수다 마당이 되었다. 환갑을 넘긴 여자들의 옷이 재밌다. 자신들의 현재와 상관없이 달라붙은 바지, 색깔을 맞춘 듯하지만 자신 없을 때 적당히 차려입는 회색 옷, 맨발의 한 여자와 알록달록 양말의 유치함, 헐렁하게 신은 구멍 뚫린 고무신발, 두 다리까지 들어 올려 드러눕듯이 앉은 여자들의 뒤뜰.
4. 한강에 불꽃 축제 갔는데 다들 텐트를 가져와서 진풍경이었어요.(사회성을 읽을 수 있는 글이어서 더욱 좋다고 코멘트했다)
해마다 전국 곳곳에서 불꽃축제를 실시한다. 한강에서도 몇 회째 계속되고 있는데 그날은 교통이 마비되고 전쟁터나 다름없다. 올해는 얼마 전까지 볼 수 없었던 텐트의 진풍경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사진을 보면 그림자의 길이가 짧은 점심 풍경이다. 불꽃축제는 해가 지고 어두워야 하는데 구경할 자리 선점하느라 오전부터 텐트를 치고 한낮 땡볕을 견디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아빠 어디가’가 히트를 치면서 캠핑 문화가 부상한 여파이리라.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경쟁 심리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는 하지만 시류를 타고 급변하는 분위기의 속도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누가 사람들은 쉽게 끓고 쉽게 식는 냄비 같은 근성을 갖고 있다고 했나. 얼마 전 ‘아빠 어디가’가 종영되었다고 한다. 저 많은 텐트들도 창고에 갇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5. 재개발지역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송도 앞 소암마을에서 3년 전에 찍은 사진 중 하나예요.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시선을 잡는 그 색. 강한 햇볕 아래 빛을 발하는 그 흰색 셔츠. 어릴 적 나의 아버지가 집에서 늘 입고 계셨던 그 셔츠. 때로는 반팔 티 대신, 때로는 속옷으로 그렇게 입고 계셨던 유년시절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해주었다. 손빨래를 하셨는지 빨랫줄도 아닌 기둥에 널어놓은 어머니의 사랑이 엿보인다. 그들은 따듯했을 보금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 고추장, 된장, 간장들을 담아놓으셨을 그 항아리들은 그 사실을 모른 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걸 보니 가슴 한 켠으로 그들의 아픔이 전해오는 것 같다. 재개발이라는 강압 속에 그들이 사는 세상 속에 잠시 거닐다 온 하루다.
6. ‘우녀’
우리집안에는 우녀라는 별명, 닉네임을 가진 두 여인이, 아니 소녀가 있어요. 지금도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사십 대 중반인 저와 어린 조카딸 은비입니다. 저는 어려서 비만 오면 집밖을 나가는 통에 엄마의 감기 들라,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들었었죠. 초등 시절에는 우산도 없이 평소 다니던 길을 마다하고 돌아 돌아 비에 젖곤 했어요. 비에 섞인 냄새도 좋았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우산 속 작은 나만의 세상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냄새에 민감한 난 비에 섞인 세상이 희석된 냄새가 정말로 좋았습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빗방울 떨어져 왕관모양 만드는 것도 좋았고 그 웅덩이에 발을 담가 물장난 하는 것도 좋았어요. 나의 이런 과거를 아는 가족들은 비가 올 때면 머리에 꽃 꼽지 마라, 하는 메시지를 저에게 보내죠. 그런데 은비가 과거의 제 모습을 그대로 닮았어요.
7.
어느 지나가는 날
살풋 지나가는 바람에 나를 찾아 떠나왔다
온통 흔들어놓았다
그러나 다시 제자리로
먼저 비어져 비어진 마음
삶의 어깨에 내려졌던 시간과 고통
부대기며 살아온 날들이 흘러간다
괜찮다 괜찮다 위로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가볍게, 살짝 그래도 흔들리고 있다
8.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
합해서 하나가 되면 무슨 색깔이 되지
혼탁한 검정색?
무지개는 일곱 색깔일 때 무지개다
* 나는 OO 사진을 좋아한다.
1. 나는 재미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 찍히면 신기하기도 하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걸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할 때도 종종 있다. 한 장으로 식상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사진이 좋다
2. 나는 골목 사진을 좋아한다. 지금의 도시 모양과 다른 내 어린 시절은 골목이 참 많았다. 친구집에도 나의 집에도 가려하면 골목길을 돌아 돌아야만 했었던 기억들. 저 길모퉁이를 돌면 아련한 추억의 그 누군가의 얼굴이 나를 반길까. 추억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검은 고무줄하나만 있어도 골목에 모여서 서너 시간 거뜬히 즐겁게 놀았던, 해가 떨어져 어두운 골목 그 누구의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을 벗 삼아 실컷 놀았던 어린 시절에 엄마가 찾는 ‘밥 먹어라’ 외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3. 나는 일상을 담은 사진을 좋아한다. 하루를 보내면서 마주치는 사물이라든가 경험하게 되는 일들에 성찰을 마주하게 되는 사진이 좋다. 이런 사진을 대하게 되면 오늘 하루도 제대로 산듯해서 좋은 것이다. 늘 마주치는 꽃들과 살갗에 스쳐가는 바람의 다름을 느끼듯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아서 좋은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아서 좋은 것이다.
4. 나는 꽃 사진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맞는 색깔과 모양과 향기로 자신의 이름을 가진 꽃. 나는 꽃 사진을 좋아한다.
5. 나는 흑백과 컬러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을 좋아한다. 흑백사진은 클래식한 기분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멋이 있어 좋지만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어렴풋할뿐 단순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컬러 사진은 이야기가 풍부하고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어 좋지만 가볍다. 오래오래 씹어야만 우러내는 고소한 깊은 맛이 없다. 하지만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을 넘나드는 사진은 적당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내 추억을 덧입힐 수 있는 여백이 있어 좋다.
6. 나는 모든 꽃 사진을 좋아한다. 꽃은 몸살을 앓고 있다. 꽃 몸살의 기운은 열을 내어 꽃봉오리를 만들고 꽃잎을 연다. 내가 아파야 네가 기쁘게 열렬하게 반기는구나. 나는 벙어리처럼 말을 할 수 없어 몸짓으로 너에게 말을 한다. 꽃술이 떨어지는 꽃 눈물을 보았는지 온몸에 멍이 들고 시들어가는 것을 보았는지. 꽃은 온 몸으로, 온 몸짓으로 생애를 보여준다.
*
다양한 수강생들이 모였다.
시낭송가
정치인
퇴직 교사
현직 교사
사진영상과 고등학생
대학생
사업가
직장인
한국어 교사
카페 주인장 등.
오후반은 모두 여자고
저녁반은 남자가 좀 더 많다.
나를 알던 사람들이 “너가 그런 걸 한다고?” 놀라지 않고,
“와, 잘 됐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응원해주고, 더러는 수업을 들으러 와줘서 고마웠다.
내 자랑이지만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공부한 게 헛되지 않았다는 마음에 기뻤다.
많은 걸 알려주고 소개해주고 싶어서 끊임없이 책장을 기웃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들춰보고, 밑줄 그은 문장을 다시 한 번 읽는다.
수강생들이 너무 많은 정보에 질려할지도 모르니 적당히 하자 싶다가도
자꾸 수업자료 파일을 열어 페이지수를 늘리고 있는 나를 말리지 못하겠다.
돈 아깝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게,
정말 잘 들었어, 만족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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