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사건의 접점에서 탄생한 시끌벅적한 뉴스가 아닌 특별한 문화 이슈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큐레이션 콕콕’. 이번 주제는 북성포구입니다.
1890년, 서울에서 내려온 정흥택 형제는 인천 중구 신포동에 상설 어시장을 열었습니다. 소규모 방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규모가 커진 수산물 유통시장은 일본인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도 어시장 운영에 뛰어듭니다. 일제는 한인과 일본인이 운영하던 어시장을 제1공설시장으로 합병하고 인천부가 직영하도록 제도를 바꿉니다. 1930년대 초 일제가 북성동 해안 일대를 매립해 대규모 공판장과 어시장을 세우자 북성포구는 수도권 최대의 포구로 명성을 누립니다.
파시(波市)가 열릴 때면 대형 어선 100여척이 정박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하지만 1975년, 연안부두 일대가 매립되고 어시장이 신포동에서 연안부두로 이전하면서 북성포구는 쇠락하기 시작합니다.(네이버 오픈백과 mazi****님)
쇠락의 징후는 악취를 동반했습니다. 바닷물에 밀려온 해저토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고 켜켜이 쌓여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북성포구 매립이 선거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을 정도였다네요. 지난해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북성포구 일대 7만여㎡를 매립해 준설토 투기장 조성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사회단체가 나섰습니다. 지역주민, 예술인, 환경·문화·청년운동가,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북성포구살리기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2016.11.22.발족)은 환경청에 ‘부동의’를 촉구하며 매립을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시민모임은 북성포구의 환경개선을 위해서는 하수관로 정비와 하수정화시설 설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갯벌은 오염정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갯벌의 정화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수관로 정비로 악취발생물질의 갯벌 유입을 차단하고, 하수정화시설로 해수가 드나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시사인천 2017.02.23)
북성포구 매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송도, 청라 등 수많은 갯벌을 잃은 상황에서 북성포구마저 사라지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시민모임 관계자 중 한 명은 “북성포구는 1883년 인천개항과 함께 한국근현대사의 온갖 영욕을 함께 했고, 지금까지 남은 인천 해안의 유일한 갯벌 포구다. 지금도 갯골을 따라 들어오는 어선들로 인해 선상파시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합니다.(인천일보 2016. 11. 18)
시민모임은 북성포구 매립이 인천의 역사와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에 북성포구를 포함시켜 북성포구는 물론 주변지역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강조합니다. 이에 인천시는 “북성포구는 오염된 갯벌 악취를 지적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시켜 달라는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북성포구 전체 32만㎡ 중 가장 냄새가 심한 일부 7만㎡만 매립해 오수정비 시설을 만들 계획이라고 반박했습니다.(경기일보 2016.11.22)
영상 두 편을 소개합니다. 북성포구 매립을 다룬 기호일보 영상과 지난해 5월 EBS 다큐 오늘에서 방송한 ‘북성포구를 아시나요’입니다. EBS 다큐 오늘은 1회가 아닌 시리즈로 북성포구를 다뤘네요.
북성포구의 의미를 알리고, 보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도 열렸습니다. 지난 3월 4일부터 15일까지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열린 <북성포구전>에는 사진작가 20명과 미술가 4명의 작품이 전시됐습니다.
포구는 시시각각 다양한 스크린을 펼친다. 갈매기를 척후병 삼아 물길 따라 들어오는 어선,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꺾이는 공장의 연기, 긴 낚싯대 드리운 강태공의 실루엣, 울퉁불퉁 식스팩 근육질의 갯벌, 먹구름을 나눠 가진 하늘과 바다. 공장 불빛과 뒤섞이는 붉은 노을 등.(중략) 매립은 직선을 의미한다. 예술가는 있는 그대로의 곡선을 원한다. 직선은 인간에게 속하고 곡선은 조물주에게 속한다. 직선 숭배에 결연히 맞서기 위해 그들은 붓과 카메라를 들었다. – 전시 서문 중에서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요. 소설가 양진채는 「인천in」 에 ‘소설로 읽는 인천’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1월 20일의 기사 제목은 ‘북성포구로 가는 길’이네요. 그는 민망하기도 하고, 반칙인 줄도 알지만 꼭 하고 싶은 얘기, 이 얘기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얘기가 있어서 자신의 소설 <패루 위의 고래>를 가져왔다고 서두에서 밝힙니다.
포구로 들어온 배는 일곱 척이었다. 꽃게, 갑오징어, 병어, 젓갈용 멸치 등을 갑판 한가운데 펼쳐놓고 그 자리에서 팔았다. 그를 따라 흔들리는 널빤지를 밟고 올라섰다. 난데없이 나타난 포구이기는 했지만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 싱싱한 생물을 배에서 바로 흥정해서 사는 모습 등을 구경하는 동안 못마땅한 마음이 사라졌다. 싱싱한 갑오징어나 꽃게, 낙지 등은 산 채로 함지박 안에 담겨 있었다. 배가 나란히 붙어 있어 건너다니며 구경할 수도 있었다. 값도 그날 들어온 배와 사러 온 사람들의 수에 따라 결정되고, 배가 막 들어왔을 때와 시간이 지난 후의 값이 또 다르다고 했다. 이 배 저 배를 건너다니며 물건을 보고 값을 묻던 사람들이 하나둘 검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사들고 뱃전을 나섰다. 병어를 잔뜩 사던 아주머니가 50년 가까이 이 도시에 살았지만 여긴 처음 와본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포구이긴 한 모양이었다. 문득 똥바다요? 하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동네의 바다가 똥바다로 불렸다는 걸 아는 사람 정도는 돼야 이 포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양진채, <패루 위의 고래> 중에서
작가는 오랫동안 인천에 살았지만 북성포구를 알게 된 것은 10년 안쪽이라고 고백합니다. 인천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경이로운 심정이었다고요. 북성포구를 발견한 뒤로는 물때를 확인하고 일부러 그곳을 찾아 생새우, 꽃게, 병어 등을 삽니다. 어느 날은 아름다운 북성포구의 노을도 봅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북성포구를 알고 있었고 찾고 있었다. 포구가 주는 떠남과 돌아옴의 여정, 비릿한 냄새, 염분이 묻어 있는 갯바람 등을 그 쓸쓸함으로 많은 사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었다.”
현덕(1909~?)은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인천과 가까운 대부도 당숙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조선일보 당선작인 <남생이> 외 다수의 작품을 동구 화평동 78번지에서 집필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인천in 2014. 6. 25) <남생이> 첫 줄에 나오는 ‘호두형으로 조그만 항구 한쪽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에 나오는 호두형 포구가 있던 곳이 바로 북성포구 주변입니다. 작가 현덕은 인천문화재단 ‘2007 대표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네요.
인천시는 인천의 역사 및 문화유산, 자연환경 분야 등 인천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인천시민으로서, 저 역시 인천의 발전과 성장을 환영하지만 인구 300만의 축포가 ‘매립의 역사’에서 탄생했다는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북성포구전> 전시 서문 제목을 공개할까요? ‘북성포구, 거기 있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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