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수강생 중에 문장을 너무 길게 쓰는 분이 계셨다. 습관인 것 같았다. 길어서 문제가 되는 건 단 하나, 그 문장이 '말이 안 되는 비문'이기 때문이었다. A4 용지 기준 한 문장의 길이가 서너 줄은 됐는데 대부분 주술 관계가 맞지 않았고, 그래서 도무지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분을 넌지시 불러 "다른 것보다 일단 문장을 끊어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면서 원고를 펼쳐 예를 들어주기까지 했다.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끊으면 좋겠다고. 다음 주에 제출할 짧은 글은 꼭 단문으로 쓰라고, 일부러, 의식적으로 그렇게 쓴 걸 보여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여전히 그분의 문장은 너무 길었고, 주술 관계가 맞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문장 공부 어떻게 하세요?
-필사 많이 하고 있어요.
-왜요? 누구 작품이요?
-어떤 선생님이 필사를 좀 해보라고 해서 그때부터 조금조금. 그냥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이요.
-아...
나는 탄식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필사를 무턱대고 하면 안 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분 부분 발췌해서 옮겨 쓸 줄 알아야 하는데. 문장을 분석해서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하지만 '당신의 방법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을 덧붙일 수는 없었다.
2024년 2개월 단위로 진행한 주제별 필사. 사랑과 이별, 읽고 쓰기, 모험과 여행, 일과 땀, 멋진 묘사들에 이어 11월과 12월 테마는 '삶과 죽음'이다. 미리 기획했기에 자료는 모아놨고 시작하기 전에 참여자들보다 먼저 필사할 겸 글을 읽어보는데... 오 마이 갓, '죽음' 얘기가 너무 많은 것이다.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죽고, 화자가 묘지에 있고,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가족의 죽음을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심지어 화자가 '죽음'인 소설까지. 이래서야 되겠나, 너무 어두운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부랴부랴 몇 개를 빼고 다른 걸 집어넣었다.
그런데 첫 주말, 이번에 처음 필사 참여한 분에게 메시지가 왔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학 필사 수업 처음인데 신청하길 잘 한거 같아요 ㅎ
다양한 소재 접할 수 있어서 좋고 선택해 주신 시도 표현력이나 여운이 깊어서 좋았어요 😊
감사합니다!!"
"와아 고맙습니다! 이런 피드백(?) 너무 오랜만이에요🤣
사실 이번 기수 주제에 죽음이 들어가서 너무 무거운 글만 올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었거든요… 이제 5일차인데 앞으로도 괜찮길 바라며 ㅎㅎ 앞으로도 필사 즐겨 주세요!^^"
"네네 전 무거운 주제도 좋아요
글 선택 폭이 깊고 넓으신거 같아서 앞으로 필사도 기대되어요 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올해 한 번도 쉬지 않고 참여하신시는 분 중 필사노트에 늘 본인 생각을 남기는 선생님이 계신다. 소설의 발췌문을 옮기고, 내가 덧붙인 '문장에 관한 짧은 생각'을 다듬어 적고, 그다음 글을 읽고 느낀 점이나 궁금한 점을 남겨놓으신다. 그런 모습이 너무 멋있고, 예쁘고.(형용사 선택이 좀 그런가?ㅎㅎ)
아무튼 일부 허락 받고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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