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 명창 "북 하나 놓고 하는 소리보다 멋있는 예술은 없다"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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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명창은 인천민예총 풍물팀에서 소리를 가르쳤던 것을 계기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후 독립해 올해로 24년째 인천에서 살고 있다. 인천이 제2의 고향인 셈. 어릴 때부터 곧잘 노래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공부한 건 중학교 3학년때였다. 늦은 시작이었던 탓에 연습벌레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노력했고, 서울국악예술고와 단국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이전에도 다수의 상을 받았지만 2016년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소위 소리꾼에서 명창이 되었다.

김 명창의 스승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故성우향 명창. 동편제에 속하는 ‘김세종제 춘향가’도 스승의 맥을 이은 것이다. 2019년 김 명창은 사설의 오류를 바로잡고 한시와 고사성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를 펴냈다. 후배들에게 좀 더 정확한 창본을 건네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했지만 기대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어느 날 프랑스에 거주하며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는 분에게 연락이 왔고, 그와의 인연으로 프랑스 ‘이마고’ 출판사와 계약했다. 『강산제 심청가』는 현재 번역 중이고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도 연이어 출간된다.
김경아 명창은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회 지회장이며 (사)우리소리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커피콘서트

올해로 13주년을 맞은 커피콘서트의 5월 공연은 ‘김경아 명창’이 맡는다. 크로스오버와 퓨전이 대중들에게 좋은 인식을 주면서 순수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저 음악의 베이스는 뭐지? 진짜는 뭐지? 궁금해하는 관객들에게 우리 소리의 매력을 알릴 예정이다.

지난해 완청한 <춘향가>는 6시간짜리라 한 자리에서 전체를 들려주기 어려웠다(실제로 총 4차례에 걸쳐 공연했다). 이번 커피콘서트에서는 쑥대머리와 사랑가, 이별가, 옥중가 같은 눈대목, 혹은 봄과 어울리는 장면을 골라(춘향과 이도령의 만남이나 이별 등) 한 시간짜리로 선보인다. 춘향가는 판소리의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수궁가)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음악적, 문학적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배우기도 어렵고 부르기도 어렵다. 무대가 단출할수록 에너지가 크게 모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번 공연도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고 한다.


산(山)공부

판소리는 연습량이 워낙 많은데 김 명창은 그걸 ‘공부’라고 표현한다. 매해 여름 산에 들어가 한 달씩 머물며 산(山)공부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목 풀고, 밥 먹고, 소리 하고, 또 밥 먹고 소리 하고, 자고. 매일 이것만 반복한다. 스승 성우향 명창이 살아계셨을 때는 함께 갔는데 요즘에는 (식사를 준비해주는 선생님이 동행할 뿐) 온전히 혼자 공부한다.

작년에 <춘향가 완청>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예전만큼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뭐 하나에 빠지면 몰두하는 성격이라 한때는 마라톤 풀코스를 열 차례 이상 완주하기도 했으나 거친 운동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그만뒀다. 요가로 몸을 풀고, 최근에는 기공 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퓨전

판소리는 포용력이 커서 뭘 입혀도(!) 어울린다. 국악과 재즈, 국악과 락, 국악과 가요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퓨전은 시대 흐름에서 탄생한 자연스러운 장르고, 김 명창도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전통은 전통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크로스오버에서도 판소리는 그냥 판소리를 하면 돼요. 세션이 우리 음악을 이해하기만 하면 되죠. 판소리 다섯 마당의 변주가 이미 나 나왔어요. 빠른 장단은 옷 입히기가 좋아서 여러 분야에서 활용됐죠. 반면 느린 가락은 아직인 것 같아요. 앞으로 독창적인 음악이 많이 나오겠죠. 전통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기본을 잘 갖추고 있어요. 어설프면 퓨전도 할 수 없거든요. 한편으로 퓨전은 오리지널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리메이크 음악이 뜨면 원조 가수가 궁금하듯 퓨전이 뜨면 오리지널을 찾는 사람도 생길 터. 그때를 위해 누군가는 전통을 지켜야 하고, 김경아 명창은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 지원군이 있는 것처럼 든든하죠. 하지만 북 하나 놓고 하는 판소리만큼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전해줄 수는 없어요. 판소리는 일방적인 소리가 아닌 함께 하는 음악이에요. 관객과 호흡을 맞추고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시너지가 폭발하죠. 다 듣고 박수치는 음악이 아니라 “얼씨구” “좋다” “잘헌다” 같은 관객의 추임새로 끊임없이 변형하고 나아가면서 무대를 완성합니다. 여러모로 관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죠. 북 하나 놓고 소리하는 것보다 멋있는 예술은 없어요.”

인천

그녀 자신 인천에서 예술을 하고 있고, 인천의 문화를 사랑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천에는 시립국악단이 없고, 우리 음악을 할 수 있는 전통극장이 없다. 또 꾸준히 전통예술을 소개할 수 있는 무대도 부족한 편이다. 앉아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행동하기로 했고, 김 명창은 2016년 ‘청어람’을 만들었다. 청어람은 인천 유일의 판소리 공연으로 1년에 한 번, 추석 연휴에 열린다.
전국의 보석 같은 소리꾼이 설 자리를 주고 대중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후원금 등으로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해야겠다는 목적이 있었고 이제는 타 지역의 소리꾼은 물론 인간문화재 선생님들도 부러워할 만한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완창(完唱) 아닌 완청(完聽)

완창은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을 말한다. 2021년 미추홀구 학산소극장에서 열린 <춘향가>는 제목이 <춘향가 완창>이 아닌 <춘향가 완청>이었다. 소리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명창도 고수도 아닌 청중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청중이 없으면 판이 살지 못한다는 것은 창을 생각하는 김 명창의 고집이자 신념이다.

2020년 인천문화재단 소식지 인천문화통신3.0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는 ‘1고수, 2명창’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1청중, 2고수, 3명창’이라 할 정도로 청중의 의미가 깊어졌어요. 청중 없는 판소리는 있을 수 없죠. 그만큼 관객의 추임새와 몰입도가 중요하고, 관객이 그 판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 어디에도 관객이 직접 음악에 뛰어들어서 더 잘하게 만들고, 흥하게 하는 형식이 없어요. 관객의 추임새가 오롯이 무대에 전달되고 그것이 다시 작품이 되어 나오는 것이 판소리의 큰 매력이죠.”


다시, 인천

서양음악을 하기 좋은 공연장 수에 비해 우리 음악을 할 수 있는 소극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잔향이 크지 않고 울림이 적은, 그야말로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성 맞춤용(?) 전통극장이 있었으면 한다고,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지치지 않고 반복한다.
이백 명 남짓의 객석을 갖춘 자그마한(?) 극장, 소리가 너무 울리지도 않고 소리를 지나치게 먹지도 않는 극장, 기계를 쓰지 않아 돈도 적게 드는 극장, 생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는 최고의 아날로그 극장이 꼭 필요하다고.

“인천에 일 년 내내 국악을 들을 수 있는 국악전용극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 가부키 전용극장이 있고, 중국에 365일 경극만 하는 극장이 있는 것처럼요. 인천에 국악전용극장을 만드는 것이 저의 오랜 바람이자 꿈입니다.”
#2022년 아트인천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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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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