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뜨개질? 악기 연주? 여행? 산책? 게임?
취미는 내가 나랑 놀아주는 거잖아요.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잖아요. 그러니 그 시간이 괴롭거나 시시하거나 힘들면 안 되죠.
글을 잘 쓰고 싶고, 글쓰기를 배우고 싶지만 선뜻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강좌가 있지만 도서관의 무료 프로그램은 ‘기초 학습’만 되풀이하는 것 같고 지속성이 없으며,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자니 시간과 돈 때문에 부담스럽죠.
읽고 쓰고 생각하라.
필력을 향상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요?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누가 알려주나요?
2020년 1월의 코로나19 사태. 비대면의 시대. 글쓰기 교육도 변해야 했어요. 직접 만나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죠. 코로나19 첫해,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비대면 강의를 준비하고, 팬데믹 관련 책을 읽으며 저도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용도, 미술도, 합창도 비대면으로 하는데 글쓰기라고 못할 게 뭐 있어?
해보자고 결심한 데에는 제가 프리랜서였던 이유가 큽니다. 살아남기 위해 주저앉을 수 없었죠.
2021년 3월에 문학 필사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의 하나로, 비대면 형식의 하나로, 공부라고 느껴지지 않는 방법으로 ‘공부가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단순히 베껴 쓰는 것이 아닌, 기계처럼 손을 움직이는 게 아닌, 생각하는 힘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쨌든 한 걸음을 뗄 수 있게요.
‘필사’ 프로그램은 있지만 ‘문학 필사’는 없는 것 같아서 ‘문학 필사’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에세이도 좋고 칼럼이나 평론도 좋지만 저는 ‘소설’에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그게 제가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문학 필사 30일’로 30일간 꼬박 베껴쓰기를 했어요. 25일은 소설을, 5일은 시 한 편을 음미하게 했습니다. 참여자에게 전달한 전체 원고가 200자 원고지 250매쯤 되더라고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빨간 날에도 쉬지 않고 아침이면 단톡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던 걸 올해는 ‘문학 필사 5주’로 변경했어요. 토요일과 국경일, 명절 연휴에는 쉬면서 여유있게 하자 싶었죠. 지난해 4기까지 하고 올해 5기로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참여자가 많든 적든 10기까지 꾸준히 이어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이제 요일별로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국내문학,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해외문학, 금요일에는 시입니다. 시는 한 편에서 두 편으로 양을 늘렸습니다.
발췌 글 아래에는 서너 개의 코멘트를 덧붙입니다. 문장을 분석하기도 하고, 문법을 전달하기도 하며, 작가와 작품 정보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참여자들은 작가의 작품 일부와 또 다른 작가(네, 저도 작가입니다^^) 의 생각을 함께 엿볼 수 있는 거예요.
‘문장에 대한 짧은 생각’으로 아래에 몇 개를 소개합니다.
사물의 특징에 관한 주관적인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침대는 과묵하고, 책상은 널따란 등짝을 척하니 내주네요(이처럼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어 표현하는 것을 의인화, 또는 인격화라고 합니다).
존 버거의 소설은 시처럼 읽힙니다. 때때로 우리는 소설을 ‘흥미진진한 스토리’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작가가 그렇게 쓰는 건 아니에요. 소설이 시처럼 읽힌다는 말은 사건(스토리)을 따라가기보다 장면이나 인물, 분위기에 압도된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차가 막힌다”는 말은 비문입니다. “길이 막힌다”, 또는 “차가 밀린다” 써야 하죠. 위 글의 경우 대화를 간접인용 형태로 문장 안에 넣으면서 구어(일상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직접 인용이라면 “차가 막히지 않았어요?”라고 써야 하지만 “차가 막히지 않았느냐는 나의 질문”으로 표현했네요).
말줄임표와 줄표가 많이 사용된 글입니다. 그런 부호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생각해보세요(말더듬이 같은가? 소심한 사람인 것 같은가? 그래서 안쓰러운가? 답답한가? 연민의 감정이 생기는가? 느림의 어조에 빨려드는가? 블랙홀 같은가? 집중력이 떨어지는가?).
취미는 내가 나랑 놀아주는 거잖아요.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잖아요.
저의 취미는 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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