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이후 겨울에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레지던시에 입주하거나 여행을 갔다. 끙끙 앓거나, 놀았다는 얘기다.
지난 9월부터 단편읽기와 소설합평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겨울강좌 커리큘럼도 짜게 되었다.
왜 그랬더라... 기억이 안 난다.
어떤 분이 “겨울강좌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요청 하셨던가?
그냥 계속 모임을 이어가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는지도.
11월 말에 가을강좌가 끝난 뒤 한 달을 쉬었다.
아, 진짜 왓챠랑 넷플릭스 왔다갔다 하면서 드라마랑 영화 엄청 봤네.
술도 엄청...-_-;;;;
그래도 많이 지우고 조금 쓰면서 새소설을 시작했다.
요며칠은 하루 5매도 늘리지 못하고 진전이 없지만 어쨌든 전진.
2020년 12월 31일에 '개강 확정' 메일을 보냈다.
그때까지 신청자는 네 분이었는데 모두 ‘일찍’ 접수하시고 참여비도 입금해주셨더랬다.
최소인원 6명이면 개강해요-라고 공지했지만
‘공간/자리/장소’를 테마로 한 단편읽기가
특히 겨울에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고(응?)
나름 오래 준비한 야심작(?)이라 수업을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소설로” 이야기하고 싶고,
“소설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주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1월 4일 월요일에 새로운 신청자가 나타났고(야호!)
총 5명으로 기분 좋게 시작!헤
*
2019년에 글쓰기 공부를 함께 했던 이oo님은 오랫동안 ‘노후 준비’로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2년 전에 나랑 함께 했던 기억이 좋아서(감사합니다!!) 이번에 신청했다고.
-노후 준비를 벌써 하시나요?
-기본 10년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현명하시네요! 멋지십니다!
수업 종료 후 단톡방에 “노후 준비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남겨주셔서 무척 기분 좋았다.(만세!)
*
어릴 때부터 글쓰기가 꿈이었는데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올해는 실천해야겠다 싶어 참여하신 분은(앗, 어느 지역에 사시는지 안 물어봤네)
우연히 블로그를 보고 이거다 싶어, 바로 메일 보냈다고.ㅎㅎ
보통의 경우 “문의드립니다. 아직 신청 가능한가요?” 혹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로 말문을 여는데 이분은 당차게도
“카카오뱅크로 수강료 입금하면 되나요?”라고... 똑똑이 아닌 탕탕!
오, 네네!!
문 열려 있습니다.
*
인천의 김oo님과 서울의 김oo님은 2년 전부터, 또 지난 9월부터 함께 했던 분!
인천의 김oo님이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재미있는 책을 추천받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수업 시간에 읽는 책(작품들)이 다 재미있어요;"
또 만나서 반가워요!
*
조oo님은 서울의 김oo 님의 소개로 참여하셨다.
"김oo 님과 나이는 다르지만 오랜 친구예요. 글쓰기나 독서에 좋은 자극을 주고 받았죠. 지난가을에는 뜬금없이 연락해서 어떻게 지내냐고 묻다가 이 선생님 수업 얘기를 하더라고요. 열정적으로 잘 알려주신다고요.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의심했을 텐데 호기심이 생겼어요. 블로그를 먼저 둘러 보고 메일로 문의했더니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나 메일 문의에 친절하게 답해주는 사람ㅋㅋ)
2시간 내내 ‘표정’으로 대답해주고, 호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헤드셋 좋아보여서 얼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쳤네.
다음에 물어볼지도 몰라...(나도 사고파... 뭐라도 쓰면 멋있어 보일 듯해서?)
*****
ppt 준비해서 살짝 강의 비슷한 걸 했고,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야기의 자리(출발/시작)
: 왜 ‘공간’인가
-그 배경이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사람/사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공간과 밀착돼 있다고 느낄 때
#6주 동안 어떤 소설을 읽나
1. 우리가 아는 곳. 눈에 보이는 곳. 물질적인 장소를 소설의 ‘공간’으로 설정한 소설
2. 알긴 알지만 작가만큼 알지 못하는 곳->작가가 새로운 시선으로 공간을 보고 있는 소설
3. 공간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가변성을 띠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이야기가 탄생하는 소설
4. 공간은 움직이지 않으나 사람의 행위로 장소가 달라지는 소설
5.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작가가 창조해낸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는 소설(판타지/sf:가상, 미래)
#질문
고시원->고시 공부하는 곳인가?
여관/호텔->하룻밤 머무는 곳인가?
책방, 서점->책을 사고파는 곳인가?
도서관->책을 읽는 곳인가?
카페->커피를 마시는 곳인가?
(노숙인의 길 / 차박 / 화장실 / 비행기의 쓰임 등등)
#우리는
팬데믹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맺음말
6주 동안 읽을 12편의 소설이 '내 기준'으로라도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작품을 평가할 만큼 문학에 대한 안목이 높다고 자부하기 어렵거든요^^;; 다만 호오로 말할 수는 있겠고(전부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호오 또한 작품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읽기 목록에는 국내외 작가가 섞여 있는데 국내작품 중에는 수상작을 '일부러' 고른 것도 있어요. 외국작가 중에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는 작가, 이 사람이 이런 것도 썼어?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혼자였다면 (나랑은 맞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았을 작품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른 사고를 하게 됩니다. 의식의 변화가 생기는 거죠. 독서력에 지각변동이 발생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 읽기의 확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소설은 이런 시간들이 쌓여서 적어 내려가게 되는 건지도 몰라요. 엄밀히 말하면 문학은 혼자하는 것이지만 내내 혼자여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읽기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합평에만 집착해서 칭찬을 들으면 우쭐해지고, 지적받으면 의기소침해지는 시간에 몰입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재미있게 지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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