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글로 소설쓰기 수업과 연대를 꿈꾸며'>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728x90
반응형

대학원생이었던 J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스웨덴에 간다고 했다. 우리는 소설창작수업을 함께 들었고, 강좌 종료 후 만들어진 모임 구성원으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학회는 5명이었다가 6명이 되기도 했는데, 그녀가 떠난 뒤에도 만남이 이어졌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중 몇 명과는 이후에도 몇 번 만났지만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없다. 

몇 해 전 J를 트위터에서 다시 만났다. J가 먼저 아는 척 했던 것 같다. 팔로우를 통해 그녀가 미주 중앙일보 신인상을 받았다는 것, 미국에 산다는 것,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야아, 반갑다, 십 몇 년 전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다시 한 번 잘 지내보자” 호들갑 떨진 않았다. 오래 못 본 만큼 ‘예’를 갖춰야 할 것 같았고, 늘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신경쓰는 나는 J를 ‘한때의 지인’으로 대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므로. 

지난해 내 첫책이 나왔을 때 J는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미국으로) “책을 보내주마”고 했더니 “아니에요, 제가 사서 볼게요, 언니.” 하기에 희미하게 웃었다. 역시나 오지랖 넓게 다가가지 못했다(얘기 들어보니 아직 안 산 것 같다ㅋㅋ).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권하는 것도 ‘예’가 아닐 듯 싶었다.(예는 개뿔. 겁나 심각한 눈치쟁이. 그건 그렇고 도대체 나란 사람은 내 작품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부끄러워할 것인가) 

9월이었던가, J는 내 삶에 훅 들어왔다. 줌으로 하는 온라인 강의에 참여하고 싶다는 말로. 나는 가을강좌부터 소설수업을 ZOOM으로 진행하고 있는데(수요일과 목요일) 그중 하나에 참여하되, 한국 시간 7시가 미국은 새벽 5시 즈음이라 참여가 어려우니 강의는 녹화영상으로 보고 합평은 이메일로 받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건 좀 안 될 것 같았다. 실시간이 기본이니 참여자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고(그런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고) 이메일 합평도 효과적이지 않을 듯했다. 아무래도 한국 시간에 맞춘(퇴근 후를 고려한 오후 7시 수업) 강의를 그녀와 함께 하기는 힘들 듯했다. J가 있는 미국 일과를 고려하면 여기 시간 오전 10시나 11시에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오전 11시에 하는 단편읽기 모임이 있었지만 동아리 형태로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거기 참여하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너를 위해 10시 수업을 개설해볼게”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최소인원으로 간신히 개강하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몇 번 메일을 주고받다가 나는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대화를 중단했다.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매일매일 J를 생각했다. J와 함께 했던 문학회, J가 썼던 소설들, J의 권유로 참석했던 김연수 작가와의 만남. 현대 한국 단편을 읽자고 해볼까? 계간지에 실리는 단편 스터디? 

나는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데, 최근 몇몇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었다. ‘방장’ 비슷한 역할을 하면 책임감이 생겨서 모임에도 덜 빠지게 돼 좋았다. 하지만 내 성격과는 역시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서기 싫었다. 수시로 자괴감에 빠지지만 나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반성하고 성찰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J와 둘이서 스터디를 만드는 게 내키지 않았고, 거기 참여할 사람을 ‘내가’ 고려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싫었다. 

어제는 너무 일찍 잠에서 깼고,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J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금세 답장이 왔고 우리는 몇 시간 후 줌에서 얼굴을 봤다. 와우! 이게 얼마 만이야. 13년? 14년? 한참 J의 근황을 들었다. 스물다섯. 1년 일정으로 떠났다가 1년 더 스웨덴에 머물렀고, 한국에 들어와 석사를 마쳤고,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어 교사로 2년 일하고, 다시 한국에서 직장생활, 그러다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였다. 7년 됐고, 시민권도 있단다. 와우! “그런데 너가 몇 년생이지?” 무려 여섯 살 차이. 그랬구나.(흑) 

“언니는요? 언니는 어떻게 지냈어요.”
(블라블라) 
“아! 그러셨군요!”
우리가 화상대화에 접속한 이유는 소설 때문이었다. 나는 J의 의견을 물었고, 그녀는 읽기든 쓰기든 다 좋다고 했다. 평일에 하는 것도, 주말에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말 나온 김에 시간을 정하고, 요일을 정했다. 내가 생각하는 수강료와 수강인원을 알려주고, 진행방식을 설명했다. J는 Missy USA(미주 여성 커뮤니티)에 올려보겠다고 했다. 나만 괜찮다면 자신의 브런치에도 홍보하겠다고 했다. 아래는 그녀가 적은 홍보 글 일부.


<미국에서 '한글로 소설쓰기 수업과 연대를 꿈꾸며'>

소설 창작을 위한 독서 및 합평 모임 줌Zoom 수업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      수업 내용 및 회차:

독서 수업 : 총 6회 (주 1회)
주제를 정해서 단편 소설을 읽습니다. 자료는 선생님이 제공해주심.
수업료: 총 6회 한화 15만원 (선생님 한국 은행으로 입금)
수강 인원 최소 6명
 
소설 합평 수업 : 총 6회 (주 1회)   
수업료: 총 6회 한화 20만원 (선생님 한국 은행으로 입금)
수강 인원 최소 6명
 
*독서 수업 및 합평 수업을 함께 혹은 따로 수강 가능함.
1회만 수강은 불가능. 한번 신청하면 6회 다 들어야 함.

·      수업 방식: Online Zoom 한국 시각 일요일 오전 10시
(Pacific Time 5PM, Central Time 7PM, Eastern Time 8PM)
 
·      수업 시간: 매회 2시간
·      수업 시작일: 6명 채워지는 대로

“수강료가 너무 저렴한 거 아니에요”라는 J의 말에 슬금 흔들렸다. 안 그래도 에너지를 모두 갈아넣으면서 강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합평은 너무 힘들고,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하면서도, 매번 후회한다. 상대가 상처받았으면 어떡하지, 하고. 좋은 말만 해줄걸 그랬나, 하고.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고. 그저 의지를 북돋는 말만 하고 말걸 그랬나, 하고. 그만 둘까? 목요일 밤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자신을 믿고 어느 순간 팍 올리셔야 해요.”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있다. 평생 소설을 붙잡고 있을 걸 알면서도 그런다. 올겨울은 바위처럼 틀어앉아 내가 창조한 세계를 굴리고 또 굴릴 거면서도 그런다. “수강료 올리는 게 좀 그러시면 시간을 줄이는 게 어때요?” 중단편 2개를 읽고 토론하려면 사실 2시간으로도 부족한 걸. 일주일에 단편 하나 읽자고? 소설을 사랑하는 우리가? 너무 아쉽잖아. J는 금방 설득당했다. 

두 시간 후에 접속을 끊고도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것 봐요, 언니. 니즈가 있어요.” 하면서 J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내주었는데 제목은 “짧은소설 쓰고 싶은데 어디서 배울 수 있나요?”였다. “이모할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웹사이트 같은 데서 교육받을 수 있을까요?” J가 게시판에 올리자 “함께 하고 싶은데 주일이라 어렵네요”라는 댓글이 달렸고, 그녀는 비서추진모드로 “교회는 일요일에 가지 않나요? 이 수업은 (미국 시간) 토요일 저녁이에요!” 답변했다. 와우! 너가 선생이구나, 고맙다.크크크

그리하여 나는 오늘 이 글을 쓴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J가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이 시간이 짠! 하고 만들어져서 캘리포니아, 워싱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소설을 사랑하는 한국인’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J가 브런치에 올린 소개글에는 이런 문장이 마지막에 달려있다.

“사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지만, 온라인으로라도 모여서, 미국 땅에 살면서 한국소설을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쌓는 것이 이민 생활에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728x90
반응형

이미지 맵

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소설,글쓰기강의/소설, 에세이,자서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