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소에서
“이 일 하면서 혼자 오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생겼어요.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대개 여행사 손님은 부부나 친구 등 커플로 오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들은 대개 유연해요. 성격도 세지 않고.
얼마 전에 내가 맡은 팀은 12명이 커플이고 6명이 싱글로 온 사람들이었는데 6명이 죄다 이상했어요. 한 명은 매번 10분씩 늦으면서도 미안하단 말도 안 하고(남자), 한 명은 자꾸 스킨십 하려 들고(남자-어떤 어머님이 길잡이 좀 그만 건드리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 명은 매사가 불평 불만이고(여자) 아무튼 다 특이했어요. 미친 거 같았어요.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혼자 온 사람들 보면 저러니 혼자 오지, 친구도 없을 거야 하게 되더라고요. 커플로 온 사람들하고는 달라요.
나도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하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데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도 유별난가? 튀는 인물인가?”
길잡이가 말할 때 우리는 셋이었다. 길잡이는 길잡이의 역할로 여기에, 나와 룸메는 방금 그녀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불쾌하게 뭉뚱그렸던 일반화의 논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혼자 온 여행자’였다. ‘혼자 온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튀어서 나를 힘들게 한다’는 길잡이의 의견은 내 룸메의 지난 여행(지난해 남미, 얼마 전 이집트) 사연 중에 덧붙여진 것이었다. 내 방 짝궁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는 여행하면서(남미는 40일 정도의 긴 일정이었는데도) 방에서 룸메랑 마주앉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각자 라면이나 누룽지를 만들어 식사를 해결한 적은 있지만 그러곤 각자 자기 할 일을 했어요. 침대를 정할 때도 ‘내 가방이 더 크니까 이쪽 쓸게’ 하면서 그분이 일방적으로 먼저 위치를 정했어요. 캐리어를 올려둘 수 있는 선반 같은 게 있으면 바로 그쪽을 찜했어요. 씻는 것도 늘 먼저. 돈에 유별나게 민감한 데다 다정한 성격도 아니어서 팀원들도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치만 전 괜찮았어요. 그분이 감기약도 주고 아플 때 챙겨주셨거든요.”
내 룸메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상관없이 맞춰줄 수 있는, 그렇게 ‘무난한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신뢰하는 자만이 가능한 일. 얼마 전 내게 ‘나도 그렇지만 언니도 무던한 사람’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구나.
며칠 후. 룸메는 터키 일정이 끝나고 그리스로 넘어가면 새로운 여행자가 조인했으면 좋겠다고 한다.(우리 여행은 터키 따로, 그리스 따로 신청할 수 있다) 왜요? 라고 길잡이가 묻자 룸메의 대답.
“언니랑 내가 원래 알던 사이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남미여행 때 며칠 만에 친해져서 엄청 친하게 지내는 여성 커플이 있었는데 개 부러웠거든요.”
룸메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90%쯤 말을 놓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 버스에서
“터키에서 이런 냉대는 처음이에요. 사람들이 나를 요즘 같은 눈빛으로 쳐다본 적이 없었어요. 길에서 장기 같은 거 두는 할배들도 내가 지나가면 소곤거려요.”
길잡이는 진심으로 서운하고 실망하고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일행 중 한 분이 “터키어로 한국인이라고 적어서 가방에 붙이고 다닙시다” 진지하게 농담했다.
터키어를 할 줄 아는 길잡이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야, 중국애 왔다”, “중국애 탄다” 같은 말을 듣고 있다.
“우리 중국인 아니라고 한국인이라고 말해요.”
처음엔 무시하더니 길잡이도 지금은 오해받을 때 바로 ‘코렐리’(코리안)라고 말하는 모양.
“그리스는 더할 거예요. 터키는 진짜 동양 사람들한테 친절하거든요. 뉴스에서 엄청 보도를 하나 봐. 할배 이런 사람들도 다 경계하는 눈치예요.”
내 경험. 룸메랑 케밥 먹으러 갔는데 직원이 이층으로 올라가라고 안내한다. 난 전망 좋은 자리를 추천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룸메가 소곤거린다. “우릴 중국인으로 알고 격리(?)하려고 이층으로 가라고 한 것 아닐까요?”
“설마. 그런 표정 아니었어. 친절한 얼굴이잖아.”
전날 레스토랑. 차이를 서비스로 가져온 청년이 ‘니하오’라고 인사한다. 룸메가 바로 정정한다. 말이 좀 통한다고(?) 여긴 걸까. 그는 신종 코로나 어쩌고 저쩌고 했고 한국의 상황을 궁금해했다. 난 아픈 사람은 10명 남짓 되지만 죽은 사람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샐러드를 서비스로 준 그에게(사장 아들) 5리라(1000원)를 팁으로 주었다......
*** 숙소에서
트윈 침대가 있는 숙소에서 누가 어떤 걸 쓸 것인가. 룸메는 그동안 몇 번이나 “언니가 여기 써요. 편한 데 써요” 하면서 벽쪽 자리를 가리켰다. 왜 여기가 편하지? 나는 이해를 못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으므로 룸메가 양보한(?) 자리에 짐을 부렸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룸메의 추천 자리는 ‘캐리어를 바닥이 아닌 조금 높은 곳에 펼쳐놓을 수 있는 공간’이거나 ‘침대 주변에 자리가 넓은 곳’이었다.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창문쪽인데 늘 그 자리는 룸메 차지. 어느 날은 “이번엔 내가 창가쪽 할게” 하고 룸메에게 말했는데 자리가 너무 비좁아서(전망도 없는, 그냥 창문이 붙어있는 게 다인) 캐리어를 펼칠 수가 없었다. 침대를 밀고 밀어서 겨우 자리를 마련했다. 룸메의 캐리어는 내 것보다 훨씬 작았는데 하필이면 그날 내가 그런 말을 할 게 뭐람. 그날 그녀의 자리는 무척 넓었다......
다음 날은 창이 넓고 뷰가 좋은 룸이었고 창가쪽 침대를 쓰고 싶었지만 티내지 않았다. 룸메는 또 “언니가 편한 데 쓰세요”하면서 벽쪽을 가리켰고 할 수 없이(?) 그 자리를 썼다. 근처에 다리 달린 평평한 스툴이 있어서 그 위에 캐리어 펼쳐놓으니 짐 찾느라 허리를 많이 굽히지 않아도 되고 편하긴 하더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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