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5차시
조경란 - 목이 긴 사내 이야기
장: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을 이토록 길게, 차분하게 쓰다니. 문장을 끌고 가는 힘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딸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스토리인 것 같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에피소드는 별로 없다. 어떻게 고향에서 올라와서 어떻게 지냈는지가 왕창 빠져있다. 소설에는 아버지와 딸만 있는데 탑 속에 스스로 갇힌 느낌이다.
천: 광고전단지의 문구가 이 소설의 핵심 아닐까? 베개 밑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직업과 관련해서(우체부) 소설의 주제를 잘 보여줬다.
김: 딸에게 했던 얘기(어디서 붙어먹다 왔냐든가, 언제 들어오냐든가)는 부인에게 했던 말이 아닐까? 사랑보다 집착에 가까운. 부인에게 일상적으로 썼던 말투가 딸에게 튀어나온 것 아닌가 싶다.
장: 아버지는 왜 오래도록 엄마 산소에서 내려오지 않았을까? 그들의 결혼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을 것 같지 않다. 둘이 도망 왔다든가...(안 그랬다면 딸에게 모진 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
김: 아버지는 대도시에 와서 직업을 잃었을 수도 있다.
장: 딸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학교 교육도 안 받은 이유가 그거일 수도 있겠다.
김: 여자가 하루종일 방에 있으면서 본 빛에 대한 묘사 좋았다.
장: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순응적이다. 노예의식 같은 게 보인다.
* 여자의 유일한 일탈: 중3 남자아이
김: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여자를 만났을 것 같다.
천: 아버지의 유일한 생명줄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장: 탑 속의 공주는 용감한 왕자가 와야 탈출할 수 있는데 과연 이들은?
천: 빛의 묘사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나비>에서도 빛이 도드라졌다.
장: 나는 두 소설의 공통점이 ‘탑’ 이미지다. 종루에 갇힌 듯한.
김: 글을 많이 갈고 다듬은 느낌이다. 마지막 문장은 누구? 여자도 목이 긴 사람이 돼가고 있다.
안성호-나비
김: 보초병은 시간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에 빠지는 건지도 모른다. ‘초병’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 같다. 실제로 나비 때문에 죽을 수는 없으니 상상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장: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났다. 여기서 나비는 무슨 의미일까?
천: 자유로움?
장: 개미보다 가벼운 존재?
천: 노란 나비의 이미지가 선명했다. 호랑나비면 이상하잖아?
김: 여자가 육지로 나가고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막혔기 때문에 죽은 것 아닌가.
장: 여자가 없는 섬도 망루 같지 않았을까? 난도...실제 있는 섬인가(백령도 근처에 실제 있는 섬이었음) 20여가구밖에 살지 않는 섬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장: 이야기보다 시적 문장, 이미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을 함께 읽었다. 너무 외로웠다는 말... 몇 문장만 읽었는데도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소설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 자살은(초병의 자살) 어느 면에서는 박수 쳐줄 일이다. 용감한 선택일 수 있다. 그것도 하나의 저항이다.
무망은 절망조차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습관처럼, 어쩔 수 없이 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80,90대 노인이 아닌 젊은 사람의 자살은? 글쎄... 그건 슬픈 일이다.
김: 살고 죽는 건 자기 의지가 아니다. 삶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게 아닌 것처럼.
장: 최소한 자살은 무망은 아니다.
김: 자살에는 불가역적인 요소가 있다. 삶은 한번밖에 없으니까.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을 사니까.
장: 무망일지라도 존재해주기를 가족들은 바랄 수도 있다.
김: 여자가 교수를 죽이는 장면은 설득력이 좀 약하다. 여자와 교수의 관계에는 사건이 2개 정도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나: 여자-초병의 연결성이 좀 약한 느낌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10년 전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지? 천재다 그랬는데 다시 보니 거기까지는 아니고, 좀더 객관적으로 읽게 됐다. 이미지와 공간이 잘 살아있고 주인공의 절절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5월 17일 6차시
황정은 - 모자
장: 모자가 뜻하는 게 뭐예요?
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뇌신경 손상으로 눈이 아닌 뇌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 작가 이력 간단소개. 이 소설이 작가에게 갖는 의미.
김: 모자로 가는 심리적 근원. 자아가 쪼그라드는 현상을 잘 그렸다. 대놓고 모자로 변하는 전개방식이 놀랍다. 심리소설 같다.
장: 읽기 힘들었다. 모자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뭔가 가리는 용도나 패션 아이템?
김: 모자 안에 감추고 싶은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장: <어린왕자>의 코끼리가 떠올랐다.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 모자를 모자로만 보지 말라.
김: 모자가 아닌 아버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장: 모자는 패션 아이템의 일부, 부속품이다.
김: 실제의 모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다. 있으면 더 좋은 것. 소설에도 그런 이미지가 드러난다.
장: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감을 상실한 존재.
장: 카프카 <변신>이 생각났는데 나는 그 작품도 읽기 어려웠다.
이: 오늘 읽어와야 할 세 편을 죽 보면서 그동안 읽은 작품을 생각해봤다. 개뿔 재미없어, 이 따위가 문학인가?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3편을 읽으니 이렇게 끌과와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작품만 읽었다.(사랑손님과 어머니라든가 빈처 등 교과서에 실린) 그런 걸 써야 돈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설이었다. 이런 소설을 읽게 해준 작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니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선의, 편안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라는 말을 했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으니 문학이 이렇게 가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니, 소비자로서의 역할? 저급문학과 고급문학이 있다고 하면 고급문학도 소비할 수 있는 통찰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감사드린다.
글을 쓰고 싶은데 가진 게 없다. 윤보영 시인 유튜브로 시를 공부하기 싲가했다. 인터넷에서 웹소설을 찾아읽는다. 한 편만 잘 써도 3억을 번다고 한다. 짧은시, 짧은소설 위주로 쓰면서 내가 가진 열정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읽는 소설 3개도 지루하고 어려웠지만 끝까지 읽었다. 비슷한 걸 똑같이 쓰면 문학이 아니지 않나, 쓰레기지. 이것도 문학이라는 선의, 호감을 얻었다.
김: 30대에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통속은 쓰레기 같아서 싫고 난해한 건 전공자가 아니니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포기한 것 같다. 웹소설은 통속과 환상이 섞인 것 아닌가?
이: 인터넷에서 짧은시 동호회에 가입했다. 30편 이상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내가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수련을 거쳐서 내가 쓰고 싶은 것의 절반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소설은 덮어놨다가 다시 펼쳐보는 재미가 있었다. 며칠 후에 의문이 생겨 다시 보게 됐다. 우리 둘째가 그림을 그리고, 넷째는 글을 쓴다. 조상이 흙에 손 묻히지 않고 백수로 3대를 산 엄청난 가족력 덕분인 것 같다. 여하튼 재미있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장: 한 단락이 달랑 세 줄인 경우도 있는데.
이: 자기 언어가 있는 작가 같다. 대단하다. 읽는 이를 자극하고 끌어당긴다. 스토리는 빤한데...
김: 소설 공부를 하니까 에세이에서 주저리주저리 쓴 게 챙피해지고 있다. 함축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글자판기라는 말도 들었는데 그게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 아빠가 모자로 변하는 걸 주변 사람이 모두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황정은 - 곡도와 살고 있다
김: 곡도는 꼭두각시의 비표준어라고 한다. 인터넷 찾아보니 이 소설은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거라고 한다. 곡도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데 그게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그렸다는 것이다.
장: 작가의 주장(글)을 자기 생각없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독자를 비유한 건가?
김: 잘못 길들이면 동물화 되고, 눈꺼풀이 사라지는 것처럼 상실된다. 마지막에는 곡도가 재미있다고 말하면서 희망적으로 끝난다.
장: 다른 집 곡도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김: 누구나 곡도를 데리고 살고 있다.
장: 누구나 곡도를 갖고 있다. 누구나 모자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처럼.
김: 주인의 속성에 따라 곡도도 달라진다. 고양이, 원숭이 모양...
이: 그동안은 먹고살기 위해 보고서를 썼는데 이제야 내가 좋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것과 상관 없는 소설 읽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훈련이 되는 느낌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읽는 것도 곡도고 스토리를 격하게 공감하는 것도 곡도다.
모범적인 단편 골라서 수없이 읽고 필사해 보려고 한다. (필사할 만한 작품 추천 좀... 장 샘이 하성란 곰팡이꽃을 추천했다)
장: 이야기 듣고 보니 둘 다 훌륭한 소설인 것 같다. 이게 뭐지 하면서 재미없게 읽었는데...
A.M. 홈스 - 진짜 인형
장: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 있는 바비인형이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여동생 바비 인형을 왜 지가 가지고 지랄이냐고?
장: 생활 곳곳에 있는 성적 판타지...
김: 사춘기 소년의 성적 판타지를 잘 그리고 있다. 이런 경험 많이 하지 않나? 성적 호기심이 클 때의 발화를 그리고 있다.
나: 소년은 12-13살? 더 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장: 인형 갖고 하는 온갖 짓이 소설에 다 나온다.
나: 질척이지 않게 잘 쓴 것 같다.
김: ‘진짜 인형’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뭐지? 섹스돌? 요새에 비추면 좀 촌스럽다.
나: 홈스가 1990년대에 쓴 소설이다. 요즘 섹스돌을 언급하는 건 진부하다. AI까지 나온 마당에...
***
그동안 읽은 작품 중에 <소녀와 죽음>이 젤 좋았다.(장, 김)
***
마지막 시간이라고 장 샘과 김 샘이 빵 잔뜩 사왔고, 맥주도 사왔고, 비가 왔고, 넷이었지만 우리는 오붓하게 행복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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