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인 엄마가 일본으로 출장을 갑니다.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세미콘 재팬(반도체 박람회)에 참석하게 된 거죠.
출장 준비를 하다가 문득 “나도 비행기 타보고 싶어” 외쳤던 막내 민아를 떠올립니다. 어린이집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자랑을 했던 모양입니다. 언니 민채는 두어 번 비행기 타고 여행을 갔었죠.
민아에게 비행기를 태워주자!
엄마는 결심합니다. 그런데 박람회에 가 있는 동안 민채, 민아랑은 누가 놀아주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따라가기로 합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할머니 혼자 여섯 살 민채, 네 살 민아를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
소설가라 시간이 자유로운 큰이모가 아마추어 가이드 겸 사진사로 동행합니다.
자, 이제 출발해 볼까요?
민채야,
민아야!
일본 여행 재미있었어?
"네!"
"다음에 또 갈 거야?"
"네!"
(아빠엄마가 돈 많이 벌어야겠네.)
"안 힘들었어?"
"안 힘들었어요."
(우리는 힘들었다-_-;;)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빙글빙글 도는 거, 바퀴 같은 거요."
(그건 대관람차란다. 할머니랑 이모는 무서워서 꼼짝도 안 했는데 너희들은 신나게 엉덩이를 들썩거렸지.)
"도쿄 디즈니랜드는?"
"진짜 재미있었어요."
(규모와 디테일, 환경과 친절에 감탄했음)
호텔도 엄청 좋았잖아. 두 호텔 다 17층이어서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이 멋있었지. 그랜드 닛코 다이바 호텔에서는 바다, 다리, 전철 지나가는 것도 보고 특히 야경이 일품이었지. 신주쿠 헌드레드 스테이에서는 멀리서 빛나는 도쿄타워와 오밀조밀 모여있는 키작은 건물들이 인상적이었어.
첫날 호텔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잖아. 매력적인 경치 덕분인지 음식이 아주 맛있었고.(사케를 곁들여서 그랬을지도 몰라) 온천 노천탕에 들어갔던 일, 프리파라 3D 공연 본 것, 특히 핑크색 대관람차 안에서 마주한 일몰이 끝내줬지. 마침 해질 무렵이라 대관람차가 360도 한 바퀴 회전하는 동안 붉게 물들어가는 오다이바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지. 높게 솟은 빌딩이며 항구에 정박해있는 배들, 하트 모양 조명과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 있던 매끈한 도로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해.
출장 차 박람회에 참석했던 엄마를 기다리면서 자동차도 탔잖아.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 고급 차가 엄청 많았지.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도 돌려보고 기어도 만져 보고, 아주 신났었지?
엄마를 만나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먹고 나왔을 때 비너스포트 건물 천장이 바닷속으로 변했던 것 기억 나? 우리 모두 고개를 젖히고 물고기가 떠다니는 머리 위 신비로움에 감탄했었어.
디즈니랜드에 간 날은 거의 하루종일 밖에 있었는데 대견하게도 너희들은 즐겁게 놀아주었지. 통나무 보트랑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재현한 놀이기구는 기대 이상이었어. 퍼레이드도 훌륭했지. 신데렐라 성을 스크린으로 사용한 빛의 축제도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고 말이야. 무엇보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소란스럽거나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데 놀랐어. '놀이'보다 질서와 환경,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보기 좋더라. 할머니가 번갈아가며 너희들 목말 태워주느라 힘드셨을 거야. 무릎도 좋지 않으신데 말이야. 빨리 입장할 수 있는 패스트 패스권을 끊느라 동분서주한 엄마도 애썼지.
다음 날, 엄마는 다시 박람회장에 가고 우리 넷은 엄마가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로 짐을 옮겼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동네 구경하러 나간 길에 너희들은 색연필이며 색종이, 소꿉놀이 세트, 풍선과 젓가락을 잔뜩 샀잖아. 할머니는 동전파스랑 선물로 줄 과자, 초콜릿을 구입했고.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는 생각에 저녁을 과일과 포장 음식으로 때웠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우리에게 맛있는 걸 사주지 못하는 걸 아쉬워했지. 민아가 잠들어버렸거든. 혼자 나간 엄마가 샐러드, 치킨튀김, 스낵, 맥주를 사와서 할머니와 이모는 배가 부른데도 맛나게 먹었지. 민채도 조금 거들었고.
하코네는 온천으로 유명하다는데 며칠 전 온천물에 몸을 담갔던 우리는 열차와 산악기차, 유람선과 케이블카 등 교통수단만 실컷 타고 왔어. 하코네의 명물인 검은색 달걀과 고기육수로 맛을 낸 일본 라멘(라면)은 별미였지. 만원 버스 안에서 민아가 선 채로 잠이 들고, 민채는 급한대로 기저귀에 소변을 누려다 바지를 적신 사건(?)은 웃픈(웃기고 슬픈) 추억이야. 네 살 민아는 서서 잠이 들 정도로 아직 어리고, 여섯 살 민채는 어느새 어린이로 훌쩍 자라 있었지. 열차 시간을 변경해 일찍 시내로 들어와 음식점에서 먹은 철판스테이크와 새우볶음밥, 얼큰한 해물탕은 매우 맛있었지? 엄마는 그제야 속이 풀린다며 만족스러워하고, 할머니는 새콤달콤한 유자 사와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어.
슈퍼에 들러 마지막으로 쇼핑을 하고, 캐리어 세 개에 짐을 나눠 담고, 부서지기 쉬운 것은 따로 빼서 어깨에 메고 가기로 했지. 어른들이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너희들이 욕탕에서 물장구 치는 소리가 다 들렸어. 하하호호 즐겁게 웃는 소리에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 민채와 민아가 즐거우면 됐다, 행복하면 됐다, 모두 그런 마음이었을 거야.
출국할 때 공항에서 구입한 값비싼 양주가 깨져버린 건 속상했지만(너희들이 번갈아가며 이동식 수레에 올라탔던 탓 아닐까?) 캐리어에 앉아 깔깔거리던 너희들을 떠올리면 그 정도쯤이야 뭐. 여행 중에 안 아팠으니 됐고, 다친 데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돌아오는 날 우리를 마중 나온 (엄마랑 작은이모가 함께 근무하는 회사) 사장님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야지. 집까지 바래다주고 '꽈자'도 사주셨잖아. 오자마자 밥 먹을 수 있도록 김치찌개와 계란프라이, 소세지볶음을 해준 작은이모에게도 감사. 우리가 일본에서 노는 동안 중국에 출장 가서 고생한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져야지.
민채야, 민아야. 여행 즐거웠어. 함께여서 행복했고.
예쁜 민 자매에게 전하는 짧은 여행의 기록
큰이모 이재은 쓰다
글, 사진, 디자인 이재은
판형 가로세로 156*216 / 총 136쪽 / 표지 랑데뷰 내추럴 210g / 내지 랑데뷰 내추럴 130g / 인쇄 소다프린트 / 총 5권 인쇄비 120,0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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