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소설 읽기 #아우렐리아를 위한 묘약 <침실로 올라오세요, 창문을 통해>(문학동네, 2008)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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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마다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각각의 스타일을 즐기며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은 짧은소설, 단편소설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 30~40매, 또는 70~80매로 나뉘는데 외국소설은 통틀어 '단편'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도 그런데 아주 길지 않은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되겠다.

제목 #아우렐리아를 위한 묘약
지은이 #마이라 산토스 페브레스(푸에르토리코, 1966~)

관능적인 문체와 도발적인 문체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죽은 자와 섹스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실렸는데 제일 처음 실린 것이기도 하고 독서모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문제작으로 꼽힌 작품이기도 했다. 아무리 사모했다지만, 장례의 예를 갖춰 시신을 지켰다지만, 죽은 여자와 거듭 관계를 갖는 건 착취 아닌가, 여자를 도구로 삼은 것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읽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읽지 않을 수 없다고 사람들이 말했고 그 문제적 문장은 아래와 같다.


"루카스는 등 근육 전체를 수축시키면서 소녀의 몸 안을 파고 들고, 사타구니 사이에 한 주머니는 됨 직한 우유를 쏟아 붓고, 소녀의 귀에다 사랑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 상태 이대로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루카스는 시체 위에서 잠이 들었고, 노란 소녀가 그를 안아주면서 사랑의 키스를 연이어 해주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루카스는 금발찌를 넣어둔 컵에서 소녀의 것을 집어 다시 발목에 채웠다. 시신을 선선한 그늘에 두고 동네로 나가 커다란 얼음 덩이 두 개, 수렵용 칼, 수지 채취용 놋쇠 그릇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간 김에 구청에 들러 익사한 창녀들을 수거할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 루카스는 자신의 정원으로 돌아왔고, 다시 수지를 찾아 쏘다니기 시작했다. 빈도가 점점 줄어들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파타고니아의 사창가 오두막으로 샐 때도 있었다. 루카스는 일주일에 세 번 수지가 가득 든 깡통과 화장수 한 병을 들고 할머니 집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새벽녘에야 찐득찐득한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된 채 싱글벙글거리며 작업실에서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절 그 마을에는 창녀의 발에 발찌를 채우는 풍습이 있었는데 강에서 시신을 건진 루카스가 여자의 발목에 금발찌를 채우는 것도 '낙인'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시신 거두는 일을 멈추고 여자를 돌보기로 결심한 것도 그렇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싱글벙글하며 작업실에서 나온 것도 음흉하다는 거였다.
나는 처음에 남자가 그 여자와 단 한 번 관계를 가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문학적 허용, 주제화, 의미화를 위한 에피소드로 이해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한 번이 아니었던 것. 우리는 계속 논쟁을 이어갔다. 작가가 이렇게 쓴 게 맞느냐, 여성 작가인 걸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 번역가가 제대로 옮긴 게 맞느냐, 번역가(우석균 님)에게 메일을 보내 물어보자, 궁금해서 못 참겠다, 2024년에 읽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토록 흥분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결말의 의문을 빼면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문장이 매우 유려하고 스타일리쉬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창녀에게 발찌를 채우는 관습이 있는 반면 그들의 똥과 피로 거름을 삼는다. 홍수가 난 마을의 재난 상황 속에서 일명 '노란 여자'와 관계 맺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끈적끈적하고도 몽환적인 묘사에서 세심하고 육체적인 매력도 느꼈다.
나는 별 세 개를 주었고, 결말의 혼란 때문에 하나를 뺄까 하다가 아니, 그래도... 하면서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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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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