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하게 만나는 친구가 있고, 십여 년 전 ‘사회’에서 알게 된, 나이 차가 좀 나는 언니다.
한두 달에 한 번 만나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는, 유일하게 나의 생일을 챙기는(심지어 선물도 줌),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져도 창피하지 않은 나의 넘버 원 친구다.
8월, 여름비가 내렸다. 직장인인 친구가 연차를 쓰고 수요일에 만난 우리는 공연을 보러 가기 전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다가 “여행 갈까?” 하는 대화를 나눴다. 국내 여행은 몇 번 가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함께 갔지만 해외에 나가본 적은 없었다.
친구는 예전부터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녔다. 내가 서유럽과 동유럽과 북유럽 나라들을 구분하지 못할 때 “여름휴가 때 서유럽 간다”고 일렀더랬다. 일주일 남짓 일정에 500만원을 쓴다는 건 당시의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했기에 ‘패키지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내게는 ‘가난한 배낭여행’이 어울린다고 여겼는데, 말하자면 나도 주변 친구들에 비해 여행을 많이 다닌 편. 인도, 네팔, 필리핀, 태국, 라오스, 베트남, 일본, 중국 등을 배낭여행, 혹은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다. 그 나라에, 그 도시에 간 건 확실하지만 랜드마크에는 닿지 못할 때가 있었고 특식은커녕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겨우 잠만 자는 생활.
앞서 말한 백수 시절의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기적처럼 소설가가 된 뒤 살림은 안 폈지만 마음만은 활짝 펴진 나는 등단 5년 차인 2019년 겨울, 처음으로 ‘패키지여행’을 실행한다. 노랑풍선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에 다녀온 것. 연이어 ‘세미 패키지’로 터키와 그리스 일정을 마친 2020년 1월, 코로나 발발(?). 또르르...-_-
떠나고 싶은 욕심을 잠재웠던 2020년과 2021년. 아무 일도 없고 수입이 10원도 없어 답답한 겨울이면 미칠 것 같았고, 불안하고, 새로운 곳에 갔으면 싶고. 하여 코로나가 잠잠해진 2022년 12월 동유럽.(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마스크 꼭꼭 쓸 때였는데 나가 보니 마스크 쓴 사람 하나도 없음) 몰아쳐 1월에는 가족과 홋카이도. 2023년 봄에는 엄마랑 서유럽. 얼마 전 이집트까지. 후후.
돈 생기면 여행 가는 건 가난할 때나 지금이나... 예전엔 엄마한테 사정하고, 동생들한테 구걸해서 비행기를 탔다면(배 타고 중국 가서 티베트로 넘어간 적도 있음) 이제는 내가 번 돈으로 간다. 꺄.(그해 야금야금 번 돈 한방에 확!) 약간의 모험가, 행동파처럼 보이게 했던 튼튼한 배낭은 아직 옷장 아래 깔려 있지만 요즘은 바퀴 네 개 달린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배웅과 마중은 매번 동생 찬스. 플렉스!(부자네 부자야/늙었네 늙었어)
뭐야, 이거. 딴 길로 샜네. 아무튼 다시 지난여름으로 돌아가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다가 “같이 여행 갈까?”로 대화 주제가 흘렀고 자타공인 추진력 갑인 나는 바로 세부 계획으로 돌입, ‘나라’를 정했다. 코로나 전에 여행을 많이 다닌 친구가 안 가본 곳+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몰아쳐서 여행을 좀 다닌 내가 안 가본 곳=이집트!
내가 너무나 사랑했고 사랑한, 지금도 사랑하는 나라 인도를 친구는 무척 싫어하는데(향신료 싫어함. 지저분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함) 이집트에는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야 가보지 않은 나라라면 어디든 좋았지만 친구의 취향은 확실한 편이었기에 그가 좋다면야 나는 무조건 오케이였다. 친구가 “그럼 12월에 연차 쓰고 가볼까?” 말했고, 그런 결심을 하는 데에는 그녀의 동생이 추석연휴에 이집트 여행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동생도 꺼리지 않은 이집트, 나도 도전해 볼까? 그런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잘 모름. 이집트 여행에 도전이란 단어를 붙이는 게 과연 어울리나 하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시길)
주말 지나고 평일을 맞이한 뒤 우리는 선별한 ‘참좋은여행사’ 이집트 7박 9일 패키지에 예약했는데 실제 출발해서 우연히 명단을 보니 우리가 신청자 1번이었다.크크
비행기가 일요일 자정 12:15였나 그랬으므로 토요일 오후 8시에 가이드 미팅. 오전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일 년 마무리 겸 이것저것 했다.(성실) 점심에는 엄마 생신 파티가 있었고, 가족(막내 동생 부부와 조카) 친지(이모네 식구)와 오붓하게 식사를...(밥만 먹었어야 했는데 술도 한 잔) 했다. 조금 졸다가, 쉬다가, 간단히 저녁 먹고 공항으로. 공항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가이드 미팅 후 수속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라운지에 들르겠다는 친구의 계획은 무산되고, 면세품 찾아서 서둘러 게이트 앞으로. 터키항공은 제 시간에 출발했고, 기내식도 나름 맛있었고, 레드와인을 마셨고, 통로와 창가 가운데 낑겨 앉은 나는 불편했지만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잠을 잤고... 그러고 보니 가는 길에는 영화 한 편 보지 않았네?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 너무 끔찍한데 그래도 ‘여행’은 가고 싶어하는 나.
비행이 왜 좋나 생각해보니 떠남이 아닌 ‘날다’더라. 이 세상에 비행기라는 게 있고, 수백 명의 사람과 짐과 밥과 물과 오줌과 똥을 싣고 하늘을 날아 바다 건너 대륙 넘어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게 참 신비롭지 않나? 비행기 조종사 존경함.
(그나저나 언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런데 본론이란 게 있나?)
자자, 다시 가이드를 만난 그때로.(인솔자인 줄 알았는데 국내 인솔부터 현지 가이드까지 다 하는 유능한 분이었다. 로마 바티칸을 가이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중 하나라고. 아무튼 자격증이 엄청 많다고 함.)
우리 팀 멤버는 총 36명.
아래는 가이드가 여행 전에 보낸 문자.(매우 기니까 그냥 패스하세요)
안녕하세요.
참좋은여행사 인솔가이드 정OO입니다. 안내 문자가 길수 있으나 꼭 필요한 내용들 적어보내드리오니 꼭꼭 다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집트는 다른 여행지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1948년에 시작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중동전쟁, 2011년에 발생한 혁명 등의 문제로 10년 가까이 여행이 금지 되었다가 2018년에야 재개가 되었습니다.
그나마도 2019년에 발생한 판데믹으로 또 다시 닫혔다가 3년만에 재개가 되었고, 국제 정세상 언제 또 닫히게 될지 모르는 나라 입니다.
언제 또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를 곳으로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 전반적인 문화 자체가 많이 다른 곳이기도 하니, 준비 단단히 하시라는 차원에서 상세한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1. 모임시각/장소: 12월16일 20시 00분.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14번 출입구 N카운터 옆 창측 "참좋은여행" 테이블
* TK091편 17일 00:15분 인천 출발
* 저와 미팅 후에 체크인 하는 걸 꼭 부탁드립니다
2. 위탁수하물: 일반석 1인당 20kg
- 휴대폰 및 카메라 배터리, 보조배터리, 라이터, 전자담배 등은 위탁수하물에 넣으시면 안되며 기내 액체류 반입은 개별용기당 100ml 이하로 1인당 총 1리터 용량의 비닐지퍼백 한 개만 가능합니다.)
3. 여행기간 중 날씨는 우리나라 보다 더우며 일교차가 큽니다. 양산, 마스크, 손목시계, 모자, 선글라스, 세면도구(샴푸,린스 꼭 포함), 개인위생용품(손세정제 등), 슬리퍼, 상비약, 복약 중인 약물 (법적으로 가이드가 손님에게 약을 드릴 수 없습니다) 등 꼼꼼히 챙기세요.
투어지역별 기온 예보
카이로 : 13~ 25
아스완 : 15~ 26
룩소 : 15~ 24
후루가다 : 18~ 25
4. 식사: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제공됩니다. 크루즈와 열차에는 전기포트와 드라이기가 없습니다. 호텔의 드라이기는 힘이 약해서 저는 늘 드라이기와 전기포트를 들고 다닙니다.
5. 환전: (참고) 보통의 경우 인당 900유로 정도 환전 해옵니다. 팁은 다 달러로 선택관광. 공동경비는 유로로 결제하셔야 합니다.
<유로, 달러 환전시 참고 내용>
달러
- 버스와 식당에서 생수 구입 : 1달러에 1병
- 식당,호텔,관광지 등 각종 매너팁을 위한 1달러 지폐 준비
- 이집트는 박시시 라는 팁 문화가 정책 된 나라 입니다.
- 그 어떤 나라들 보다도 팁에 예민 합니다.
유로 (1인당)
- 공동경비 : 90유로 (필수)
- 이집트 비자비용 : 25달러 (필수)
- 크루즈 텍스 : 15달러 (필수)
- 박시시 팁 : 40달러 (필수)
- 옵션관광 7종 (10개 코스) : 755유로
- 호텔팁, 식당팁, 식당 생수, 버스 생수 등 각자 비용을 내야하니 1달러짜리를 꼭 여러장 준비하세요. (30장 이상)
- 여행 중 레스토랑, 휴게소, 기념품, 특산품 등 개인적인 사용을 고려하여 여유있게 환전하시면 여행이 즐겁습니다.
- 유로는 큰 단위의 지폐 위주로 준비하세요.(작은 단위 잘 안 씁니다)
- 여러 상황을 대비해서 비자, 마스터카드 등 해외에서 사용 가능한 카드를 꼭 준비해 주세요.
6. 현재 사용 중인 여권인지 꼭 확인하세요. 비자를 붙여야 하므로 최소 5면 이상의 여유가 남아있어야 합니다.
7. 후르가다 수영장 매우 잘 갖추고 있으나 현지 바람심하고 쌀쌀합니다 그래도 수영 하실분은 수영모,수영복 가져오시는거 부탁드립니다
8. 일정상 식사가 늦어질 수 있으니 냄새가 강하지 않은 간단한 간식(초코바)을 챙기시는 것도 좋습니다 (마른 오징어, 쥐포 등 냄새가 강한 음식 금물).
식당에서도 한국 음식은 드셔도 됩니다. 컵라면 뜨거운 물은 1달러 내면 됩니다.
자주하시는 질문들
1. 이집트 내 이동은 항공 없이 기차로 합니다.
2. 나일강 크루즈를 제외한 숙소는 거의 매일 바뀌게 됩니다. 바퀴 4개짜리 큰 가방이 버스에 짐 넣고 빼기에 편합니다.
3. 관광지에는 소매치기가 많습니다. 중요한 물품(여권, 현금등)을 넣을 가방(몸에 밀착되는)혹은 여행용 복대 등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4. 버스 내부 또는 투숙하는 객실 등에 고가의 물품이나 현금 등 중요품은 두고 다니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5. 이집트 현지의 와이파이는 유료이거나, 무료여도 접속 절차가 까다롭고 매우 느립니다.
요즘 우리나라 통신사들이 일주일에 3만원대의 로밍 요금제를 가지고 있으니 되도록 로밍 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6. 1달라 화폐 준비를 강조 드렸는데, 사용 용도로는 박쉬시라고 명명 된 각종 팁들로 많은 쓰임이 있습니다. 호텔이나 열차, 크루즈에서 케리어를 대신 날라다 주는 포터블 서비스 비용이 대표적이고, 하루 세끼 식당 팁이나 호텔에 두고 나오는 메이크업 팁이 있습니다. 대부분 유료화 돼 있는 화장실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충 그냥 넘겼다가는 시끄러워지는 문화를 가졌는데,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르는 게 여행 입니다.
그래서 인당 40씩 걷어서 저렴하게 팁처리하는 방안을 쓰려합니다 인터넷이나 유투브에 이집트 검색시 개인여행객들 하루에 못해서 50달러씩 뜯겼습니다
7. 이집트는 정말 많은 볼거리가 있는 나라지만 인당 국민소득은 3천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인 우리 국민이니 막 깍거나 아까워하지 말고 배푼다 라는 생각을 가지는 게 좋겠습니다.
8. 이집트 일교차 매우큽니다 아침 저녁 쌀쌀하나 숙박시설 어디서도 난방하지 않습니다 추위타시는 분들은 개인 난방 챙겨주세요
9. 한국음식 컵라면, 컵밥 등 가져오시는거 추천드립니다
10. 기차에서 주무실때 필요하니 클렌징 티슈, 수건, 핫팩(기차안 난방 하지않습니다 일교차가 커서 춥습니다). 또한 기차안 전기가 불가 하오니 핸드폰 충전하실 보조배터리 가져오셔야 합니다.
11. 수신기를 제공해 드립니다 대신 이어폰을 본인이 준비하셔야합니다
12. 이집트는 어느관광지를 가도 짐검색을 합니다 고가의 핸드백이나 옷등은 절대가져오지마세요 짐검색시 옷이나 백에 스크레치가 나도 현지에서 절대변상해주지 않습니다
13. https://youtu.be/_YowwJuysb0
개인여행객 유투브입니다 3분47초부터 박시시 팁과 이집트 야간기차에 대해 아주잘 나와있으니 참조부탁드립니다
14. 미팅시간 지켜주시는걸 부탁드립니다
15. 이집트는 일교차가 매우커 쌀쌀합니다. 허나 호텔 어디서도 난방을 하지 않습니다 추위타시는분들은 개인 방한기구 꼭 가져오세요
16. 기차에서 하루쓸 핫팩 꼭 가져오세요
17. 개인 이동이나 여행은 절대 불가합니다. 현재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은 없으나 하마스가 이집트 내로도 많이 들어와 있고 팔레스타인 난민도 들어와 있습니다. 저희가 투어 할때도 이집트 로컬 가이드가 최소 1~2명 있고 때에따라 경찰도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 다닙니다. 호텔 밖을 나가 시거나 특히 개인적인 후르가다 투어신청(여행자 보험도 안되는 개인수상투어, 사막투어)하여서 올해도 한국인 2명 다치고 (보험불가) 1명 사망 하였습니다.
Ps. 어려운 시국에 참좋은여행사와 저를 믿고 같이 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4년의 유럽생활중 1년반을 이집트에 살았었고 재작년 10월부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온 패키지 가이드입니다 무거운 마음 다 내려 놓으시고 저와같이 한번의나라,최초의 나라, 성지순례의 나라, 휴양의 나라, 파라오의 나라이자 로마의나라 를 보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문의사항 문자로 남겨주시면 바로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다 좋은데 띄어쓰기를 너무 안 해서 약간의 괴로움을 참으며 읽었당ㅋㅋㅋ 가이드는 90년생 대전 출신(본인이 말해줌) 남자분이었고, 부족함 없이 과함 없이 ‘가이드다운 실력과 능력’으로 팀을 잘 이끌어주었다. 말이 많고 잘 웃는 사람이었음.
KTGA 가이드? 가이드도 등급이 있는데 우리 가이드는 ‘트리플스’ 최고 등급이고, 우리나라에 6명밖에 없으며 본인이 최연소라고... (네네^^)
“그렇게 안 생겼지만 미술, 오페라, 독서를 젤 좋아해요.”
“시골 개 닮았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얼마 전에 금발로 염색했었거든요? 일 없으면 대낮에 동네 어슬렁거리니까 편의점 알바생이 때 지난 삼각김밥도 주고 동네 아주머니가 힘내라고 말해주고. 여러분은 저를 가이드님, 팀장님 이렇게 부르잖아요. 간혹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분도 있고. 여러분들 덕분에 대우 받고 삽니다.”
5번. 나는 통신사가 KT인데 이집트 2기가에 33,000원짜리 로밍 상품이 있더라. 2기가가 가장 저렴한 거였다. 그거 신청해서 잘 쓰고 옴. 로밍에만 의지했다면 2기가가 부족했을 텐데 크루즈에서는 1기가 무료 이용권 줘서 그거 쓰고, 후루가다 호텔에서는 와이파이 팡팡. 기차랑 버스 이동 시 드문드문 가족들에게 사진 보내며 사용. 통장에 새롭게 들어온 돈 없나(입금 예정인 수입 없었음) 확인하는 데도 사용.ㅋㅋㅋ
12번. 고가의 핸드백, 옷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데(나는 그런 거 없어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지만) 다 가져왔던데? 더 웃긴 일화. 누군가 프라다 가방을 메고 있길래 “저거 진짜일까 가짜일까?” 했더니 친구 왈, “프라다가 뭐 얼마나 한다고 가짜를 가져왔겠냐?” 헐... 더 비싼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에 비하면 프라다는?ㅋㅋㅋ
15번. 내가 사랑하는 침낭.(침낭 자체를 사랑함) 20대에 인도갈 때 샀던 3만 얼마짜리 남색 침낭을 10년 넘게 줄창 쓰고 코로나 기간에 산 자주색 침낭.(사용 계획도 없이 그냥 사고 싶었음. 차에 두고 낮잠 잘 때 쓰거나 작업실에서 잘 때 사용하려고. 그렇게 쓴 적은 별로 없지만 장식장 안에 침낭이 들어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함. 침낭 검색할 때 대개 블랙 또는 블루였는데 검색하고 검색해서 자주색 산 걸 지금도 흡족해하고 있음) 기차에서랑 약간 쌀쌀한 호텔에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빨아야 하는데 아직 그대로 있네.ㅎ
*비행기 에피소드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가 전한 말.
“계속 줄 서 있는데 우리 칸에 들어간 사람이 한참을 안 나오는 거야. 줄을 저기 따로, 여기 따로 섰거든. 저쪽 줄은 계속 빠지는데 우리만. 내 앞에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좀 짜증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 그러다가 어떤 남자가 나오는데 머리가 푹 젖어있더라고. 머리 감았나 봐? 자기도 줄 선 사람 보고 놀라더라고. 사람 없을 줄 알고 그런 짓을 했나 보지?”
“한국 사람이야?”
“그런 듯.”
“헐...”
->인터넷 뉴스에서 본 ‘기내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
.화장실에서 이 닦지 말자(세균 득실)
.기내식 트레이에 흘린 먹지 말자(절대 안 닦음)
.앞 의자 뒤에 꽂힌 안내 책자 등도 매우 더러우니 가능하면 만지지 말자
... 머리 감으면 안 된다는 없었고 그건 위생과 관련돼 있다기보다... 흠.
터키항공 승무원이 파우치를 줬는데 안에 칫솔, 안대, 슬리퍼는 물론 양말과 림밥까지 들어있었다... 귀국 비행기편도 터키항공이었는데 이때의 파우치 케이스는 무려(?) 만다리나 덕. 흐음.
터키항공 퍼스널 컬러는 레드. 베개, 헤드폰, 담요, 안전벨트, 승무원 유니폼 등등 모두 빨강.(카이로 도착 후 첫날 기차로 이동 예정이라 담요를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듯해 친구랑 나랑 터키항공 담요 줍줍->안 씀. 무게 때문에 버리고 올까 하다가 한국까지 들고 옴.)
착륙 직전의 창밖 야경. 크리스마스 트리를 깔아놓은 듯 앙증맞고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
직항 아니고 이스탄불에서 환승. 여유가 별로 없어서 가이드 따라 쪼르르...
야호. 카이로 도착. 공항에서 이집트 비자 발급(25달러) 받고 입국해야 한다.
이집트에서 가이드가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 “이집트에서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어요.” “이집트에서는 무조건 팁을 내야 합니다.”
공항에서 경찰 호위(?)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데 이때 팁을 200달러 줬다고 했었다. 돈 많이 주면 빨리 나가게 해주고 아니면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완전히 일반화되지 않은 고속도로도 팁 주고 사용. 신호 위반도 팁 주고 무마. 무덤에서 사진 찍을 수 있게 팁 주고. 식당에서도 주고, 호텔에서도 주고.
화장실 사용료도 내야 하는데(고속도로 휴게소뿐만 아니라 우리가 밥을 먹은 식당에서도 마찬가지) 1인 1달러가 가장 비쌌고, 가장 쌌던 건 3인 1달러. 오줌 한 번 싸는 데 1300원 내거나 350원...ㅋㅋ
“이집트에서는 숨 쉬는 것도 팁이에요. 내 손으로 짐을 옮긴다? 안 돼요. 그러면 안 돼. 이들에게 맡기고 돈을 줘야 돼. 그게 법이에요.”
1일 차
북에서 남으로 밤새 달리는 야간기차. 이집트에는 일반 기차와 슬리핑 기차가 아예 따로 있다.(인도에서는 일반 칸과 슬리핑 칸이 나눠져 있었음).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찍을 때 탔던 바로 그 기차. 유서 깊은 기차. 우리나라 비둘기호보다 더 시설이 좋지 않은. “이것도 긍정이야. 한번 해보는 거야. 대한민국에서 너무 곱게 크셨어. 어려운 시절로 돌아가는 거야. 얼마나 낭만있는지 몰라. 밤새 덜컹덜컹. 안마가 저절로 될걸? 비행기에서 구겨져있었던 몸이 확 풀릴걸? 기차인데 급정거도 해.”(확, 마.) ->왜 반말로 썼냐고? 가이드가 공손한 타입이 아니었음. 반말을 정말 많이 했음...
이집션 타임:기차가 언제 올지 모름. 타임 테이블보다 이르게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고. 플랫폼에 늘어서 있는 가게 중 한 곳에서 마련해준 의자에 앉아 기다림(당연히 가이드가 그 값을 치렀다고 함. 2리터짜리 물 한 통을 1달러에 팔았다.)
기차에서 저녁을 줬는데 뚜껑 열자마자 못 먹을 걸 직감. 그래도 한두 개 꺼내 씹어봤는데 으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대로 반납하고 플랫폼 가게에서 받은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 먹고 잠. 역장실 똑똑하고 컵라면 보여주면 뜨거운 물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미리 팁을 다 주었으니 얼마든지 이용하시라) 그것도 귀찮고 기차 컨디션 보곤 절망해서 도저히 뭐 먹고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ㅎ 원래는 팩소주 한 잔 까고 자려고 했으나 본의 아니게 금주함.
*한국 시간 맞춰서 필사 올리는 거 힘들더라.
이집트 시간 9시 40분이었고 한국 시간은 4시 40분. 뭐 어쩔. 그냥 올리고 잤다.
*여행자란.
일단 모험가는 아님.
뭐든 싸면 좋고, 좋은 것도 봐야 하고, 편해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따뜻해야 하고...
불편해도 참는 걸 우리는, 나는 할 수 있나?
비좁은 것, 가방을 펼칠 수 없는 것, 추운 것, 물이 나오지 않는 것, 뒤척일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기차에서 뜬금없이 떠올린 단어. 장애. 인권)
2일 차
아부심벨.
람세스 2세의 자기자랑 끝판왕.
스위스 고고학자가 발굴. 주변에 아무것도 없음.
수단이 있는 남쪽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
이집트에 있는 신전, 무덤이 왜 다 흙색이냐고요? 원래 전부 금이었는데 도굴꾼들이 금을 전부 떼어간 겁니다. 그래서 흙만 남은 거예요!
어디 가면 직업을 밝히지 않는다는 가이드.
밝히자마자 사람들이 하나같이 묻는다. “어디가 좋아요?”
“작가들한테 무슨 책이 재미있어요? 하나만 말해주세요, 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요즘의 나라면,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그레이엄 그린이 짱입니다!”
3일 차
혼자 온 남자 두 명.
그 중 한 명과의 대화.
“저분도 저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마누라가 같이 안 간다 그래서?”
“왜요?”
“가난한 나라는 여행하기 싫대요.”
“자녀들은요? 안 친하신가부다.”
“친하긴 한데 여행 다닐만큼 친하진 않아요. 아들이 중학교 때까진 그래도 다녔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뭐...”
“딸은요?”
“딸하고는 더 안 하죠.”
“부인이 착하시네요. 혼자 여행도 보내주고.”
듣고 있던 나... 어쩜 저렇게 사생활을 나눌 수 있지? 자연스럽게?
“혼자 온 건 이번이 세 번째예요. 전에는 나 빼고 혼자 오신 여자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사연 있는 것처럼. 난 그냥 와이프가 싫어해서 혼자 온 건데.”
어떤 사연? 여행할 친구가 없는 사연? 혼자 여행하고 싶은 사연? 혼자 다니는 게 편한 사연?
...그런 것도 사연이 될 수 있을까.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걸까?
구름.
갈빗대 같은 구름. 간격을 두고 겹겹으로 떠 있는 구름 사이로 스며든 빛. 뼈가 저릴만큼 강한 햇살.
사막.
올리브밭도 차밭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황토. 흙산. 보이지 않는 먼지. 보이지 않는 신기루.
도대체 사는 게 무엇인가 싶은. 평생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는 사람이 죽기 전에 뉴욕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꿀까? 생과 꿈의 관련성. 이상.
다 해볼 수 없고 다 얻을 수 없고 다 먹을 수 없는데 나는 왜.
포기와 체념이 삶을 살 만하게 한다고 여겼던 순간. 그때를 잊지 말자.
체념이 긍정이다.
크루즈에서의 식사.
둥근 4인 테이블.
“둘씩 둘씩, 이렇게가 팀입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으시면 돼요.”
그리하여 같이 앉게 된 대구에서 온 친구 사이.(70대 초반으로 추정)
“오전에 공항 철도를 타고... KTX보다 공항 철도가 편해서... 대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유럽에 가는 게 별로 없으니까... 동남아 가는 건 간간이 있긴 하던데... 딸은 없고 아들만 있어서... 이거 맛있네... 네...”
일상의 대화들, 아, 지루해.
예전에 스승님이 말씀하셨지. ‘의미의 수준을 높여라.’
크루즈에는 보석 가게, 옷 가게가 있었는데 알파벳 몇 개를 상형문자로 바꿔 티셔츠에 새겨주었다. 1개 10달러.(대부분은 여러 벌을 사면서 8달러로 할인받았다)
가족들 거 전체를 구매한 분도, 본인 것만 한 분도, 부부가 커플로 맞춘 케이스도. 나랑 친구는 안 함.
5일 차
낮. 크루즈 루프탑.
쪽배로 크루즈에 접근하는 상인들. 타월과 원피스 등을 팔았다.
저 아래에서 물건을 던져 구경하게 한 뒤 구매 의사를 확인하면 두툼한 봉지를 던져 그 안에 지폐를 넣게 한다...
우리는 난간에 팔을 얹고 내려다보고 그들은 끊임없이 크루즈 위를 올려다보면서 가격을 말하고, 물건을 소개하고.
처음에는 까르르 까르르 웃으면서 예쁘다, 잘 어울린다 하다가 나는 어느새 ‘그들과 나의 단차’가 불편해졌고. 사지도 않고 쳐다보고 있는 게 싫었고...(차라리 살걸 하고 나중에 후회했다)
5달러에 타월을 사려던 누군가는 1달러를 더 달라는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상인 왈, “너한테 1달러는 큰 돈이 아니잖아.” 말했다고. 아...
우리가 루프 탑 난간에 서 있었던 건 잠시 후면 배가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말 때문이었는데(우리나라에도 있는, 댐을 막아 높낮이를 조절 후 강에 재진입) 나는 기분이 상해 그냥 숙소로 들어와 버렸다.
내려다보고 있는 게, 그들의 욕망을 들어주지 않는 내가 싫어서. 5달러 했다가 10달러로 말을 바꾸는 그들을 무시하기도 했을까.
침대에서 이문세의 <사랑 그렇게 보내네>를 들었다.
(그건 그렇고 여행 가기 전 나는 애플 뮤직을 재구독 한 뒤 이런저런 노래를 담아 갔다. 친구와 나는 이문세, 이승환,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등을 즐겨 들었고, 다섯 살 차이가 나지만 세대가 비슷한 것에 감사했다☺️)
여행하면서 다듬어진 플레이 리스트.
또 한번, 상대와 나의 ‘높이’로 괴로웠던 때가 있었는데 선택관광으로 마차를 타고 룩소 신전 외부, 룩소 시장을 돌았을 때. 그런 건 줄 알았으면 신청 안 했지. 마차 안에서 구경하듯(내가 뭐라고) 사람들을 찍고 손 흔드는 내가 너무 싫었다...(이런 나의 마음과 달리 그들은 우리에게 거부감이 없었던 듯 아이들은 마구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어른들은 제 할 일 하기 바빠보였다..늘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겠지 ㅠㅠ)
*크루즈 이벤트
티타임도 있고, 아이스크림 타임도 있었다.
*선덱
위에 올라가 앉거나 누워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노대.
(살면서 선덱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일몰 끝내줬음...
*일출도...
*마부의 인사
“코리안 넘버 원...” “코리안 넘버 원...”
“나에게도 어린 여동생이 있으니 한국의 펜을 주세요.”
“코리안 넘버 원... 차이니즈 넘버 투...”
6일 차
패키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1)개인이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함
2)개인이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함
3)젊은 사람들은 패키지를 싫어함
ㅋㅋㅋ
패키지는 합리적인가.
개방성과 자율성 없음.
상품 금액만 있어도 여행을 떠날 수 있으나 ‘옵션’까지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나?
꼭 봐야 하는 걸 선택관광으로 빼놓고 ‘이집트 여행 이 가격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건 좀 아니지...(이집트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여행 상품 모두 마찬가지. 외국도 이런 시스템인가?)
패키지 옵션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1위는 ‘탈 것’
마차 타고 동네 한 바퀴, 기차 타고 높은 데 가서 아래 내려다보기, 푸나쿨라 타고 단번에 올라가기, 배 타고 풍경 보기 등등
(그러나 부다페스트 야경 투어 너무 좋았고, 꼭 해야 하고, 루체른 선상 투어 멋있었고, 아름다웠고.)
7일 차
비어있는 땅
여유가 아닌 가진 것 없음의 느낌.
모자라 보임과 부족함.(색깔이 화려하지 않다. 박시시 문화가 여행객을 피곤하게 만든다)
수 천 년 전부터 ‘자기 것’이 있던 나라. 불가사의와 미스터리의 나라.
수많은 신을 섬기며 하늘과 초월에 가 닿았던 나라. 지금은?
지금은 없고 역사만 있는 건 아닌지.(그런데 ‘지금’이 없을 수 있나?)
*팁(박시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운운하며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 뒤 1인당 40달러를 걷어 팁으로 쓰겠다던 가이드.
36명*40달러(약 52,000원)=1,872,000원
그러고도 모자랐다고 하던데? 왜? (고작 7일 여행에 팁 비용이 187만원이라니. 하.)
이집트 사람들 평균 월급이 15만원~20만원 사이라고. 그래서 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 여행자들에게?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월급이 20만원인데 여행자들이 7일 여행하고 팁만 180만원을 쓴다???
가이드가 팁을 말할 때의 멘트 중 마치 자기 돈을 쓴 것처럼, 자기 돈으로 우리에게 선심 쓰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자꾸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빚, 짐을 얹은 듯한 느낌.(그래서 40달러 냈잖아여...)
생색에는 애교가 필요하다.(나 잘 했찌???)
생색은 가벼운 것일수록 좋다.(좋은 생일 선물 사주고 생색내면 어후, 말 안 해도 고맙거든?)
안 내면 더 좋고.
이따금... 야단 맞는 기분이었다.
*초과에 대하여
적정 행복이 아닌 넘치는 것. 넘쳐흐르는 것.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우리를 ‘초과’로 보고 부러워할까?)
초기 문명에서는 삶이 힘들었기 때문에 질병 없는 곳, 흉년이 없는 곳을 낙원이라 여겼다. 하지만 인류가 점차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넘쳐나는 것을 낙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석이 넘쳐나는 곳, 먹을 것이 많은 곳 등으로...
크루즈 내 뷔페는 분명 초과였고, 낙원은 아니었다.
(저 많은 걸 다 어째? 저렇게 많은 음식과 디저트는 다 우리가 낸 돈으로 만든 건가? 설마 남은 걸 모조리 버리진 않겠지? 좀 더 나은 쓰임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잉여의 정신
연애할 때는 약속이 곧 의미이자 추억이었는데 함께 사는 일은 말 그대로 일상이어서, 이벤트가 아니어서
지루해.
재미 없어.
의미 없어.
술을 먹지 않고는, 뇌를 자극하지 않고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가 없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안 됨.
옆에 있는 사람을 우울하게 하면 안 됨.
여행이 그저 그렇다는 티를 내면 안 됨.
열심히 사진을 찍자.
여행은 돌출, 양각, 튀어 나옴.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12월 18일 월요일, 12월 19일 화요일, 12월 20일 수요일은...그저 월화수였을 것이다.
낯선 장소, 낯선 음식, 낯선 사람, 낯선 풍경, 낯선 목소리, 낯선 냄새, 낯선 소리 덕분에 나는 특별한 날을 보냈고.
그러나 여행지에서도 우리는 이런 대화만을 나눈다.
-어디서 오셨어요?
-두 분은 어떤 사이?
사는 곳과 관계. 이건 편하게 말할 수 있나.
고향과 출신과 사적 인간 관계.
대학생이라고 하면 무슨 공부 해요? 물어보는 건 실례가 안 되는 듯?(학교부터 물어보는 꼰대도 있겠지만)
성인의 경우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돼요?(이건 좀 단계가 필요함)
*8일 차
부부 팀이 가장 많았고
모녀
모자
동성 친구 커플
동성 친구 모임(아마도 골프?)
옛 직장동료
혼자 온 남자 둘
그리고 우리는...
나의 소개. “나이 차가 좀 나는 친구 사이예요.”
일흔이 되기 전까지 많이 여행 다니고 싶다고 했던 엄마.
지난해 봄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와 영국에 함께 갔던(10박 12일) 엄마는 초초초 흥분+행복 상태였다. 거금을 들여서 간 첫 유럽행. 팀원들은 왠지 ‘때깔’부터 다르고.(뭔 때깔?)
일단 뭇 사람들과 더불어 떠날 수 있는 상태까지는 됐으나... 그럼에도 돈을 써야 하는 때는 많았고.(너무 비싸다, 됐어, 필요없어, 그건 하지 말자. 먹지 말자)
엄마 왈, “우리는 언제나 못 따라가.”
어떤 사람들의 어떤 삶을 못 따라간다는 걸까?
(해외 한 번 못 나가본 사람들...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사람들...)
*쉼이 되는 여행
역시... 돈이 있어야(많아야)
*다시, 돌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따금 모래바람, 건조한 사막, 커다란 돌덩이. 폭우와 폭설.
인간의 삶은 자연과 닮았다. 예상치 못한 공격.
‘손절’은 인공적인 게 아냐, 자연의 것이야...
넓은 아파트라서 좋은 게 아니라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강풍을 막아서 좋은 게 아니라 강풍을 미풍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인간의 잘못-구할 수 있는데 안 구했어? 대비할 수 있는데 안 했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어?
자연의 언어-침묵.(해석은 인간의 몫)
다시.
‘손절’은 침묵이 아니야. 말했는데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거야...
후회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생기는 변수처럼 삶의 변수도 받아들인다.
*살벌하게
가이드가 종종 쓰던 말
“제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탬버린 치기예요. 탬버린을 살벌하게 칩니다.”
모든 여행은 나름 살벌하게 좋다.
*9일 차
*의심과 생색
친구를 정의했었다.
그만 꾸짖어. 들추지 마. 믿어.
“네 덕분에 이걸 할 수 있어서 고마워, 이런 표현을 한 단어로 말하면 뭐가 좋을까?”
며칠 후 나의 대답. “그건 영광이야. 영광밖에 없어.”
당신 덕분에.
함께 해줘서 영광이었어.
덧. 쇼핑은 즐거워.
이밖에도 몇 개 더 샀지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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