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걸어보기는커녕 추워서 카페에서 라떼 마시며 지인을 기다림.
저녁 먹고 연극 보려고 했는데 친구가 늦는 바람에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장례식장 편의점>은 연출가 초대로 관람.
10년 전 ‘일’ 때문에 두어 번 만났는데 직장 다니며 연극을 한다는 말을 언뜻 들었으나 이후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간 본격적으로 연극 수업 과정을 밟고, 연기하고, 극 쓰고 연출까지 하신 모양. <장례식장 편의점> 박장용 작, 연출.
관람 당일 이런 티켓이 도착.
인테리어 코드는 레드.
무대는 대형 병원 내 편의점.
대학 1학년 알바생과 부점장이 있는 편의점에 상주이자 손님이 초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장례식장 초에 왜 소원성취 스티커가 붙어 있냐고 항의하는 남자. 두 사람은 당황하며 사과하는데 화가 난 남자는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점장이 도착하면 5호실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점장은 퇴근하고 지각한 점장과 알바생은 또다른 케미를 선보인다.
부점장이 직급의 차별화와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면 점장은 알바생 진혁에게 형이라고 부르라며 관계의 벽을 허문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까마시고 카트를 타고 노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소원성취 초 손님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이후 점장과 부점장의 관계(친구 사이)가 새롭게 드러나고 결말에 ‘건달 역할’을 맡은 배우를 통해 알게된 사실.
소원성취 초는 고인이 생전에 요구한 것이다???
안톤 체홉 작품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결말의 반전(?)이 그 극장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앞부분은 진행이 느려서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내가 갔을 때 몇몇 관객들은 팍팍 웃어주셨지만^^;;;) 편의점 점장들과 알바생의 관계가 빤하게 사회적이면서도 진부하게 흐르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건달의 이미지를 고정관념으로 확장하지 않은 것은 믿음직스러웠다. 연극 볼 기회가 흔치 않은데 가까이서 배우들 본 것도 좋았다.😆
토요일에는 인천에서 이런 걸 봤다.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정말 멋진 공연이었다.
객석에서 시작해 무대로, 마지막에 다시 객석으로.
인사도 멘트도 없이 70분을 꽉 채운 것, 음악과 음악 사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댄스를 이어간 것도 너무 좋았다.
한 명이 남든 두 명이 남든 무대를 지키다가 자연스럽게 세 명이 되고 다섯 명이 되고 여덟 명이 되고.
발레곡 클래식 가요 창까지, 여러 장르를 아울러 ‘몸으로 보여주는 콘서트’를 펼쳐내더라.👍
그들의 유연하고 놀라운 몸이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다웠다.
한 댄서가 반복해서 한 동작 하나.
두 발을 어깨 두 배 너비로 벌리고 빠르게 만세(혹은 태양에 대한 경배)를 반복하는 것.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저 휘어짐과 펴짐이 끔찍하게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즈음, 저건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몸짓이라고, 어떻게 저런 일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지?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웃었고 내 뒷좌석의 아주머니는 “아이고 그만해요.” “힘들어 그만해.” “저러다 죽겠네.” 연민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멋짐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괴물을 보았다. 그리고 괴물을 본 세대들의 다른 반응을 보았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놀라운 성취는 보통 사람의 인식과 경험을 넘어서 있다. 그러니 (신이 되지 못한) 예술가를 경외할 수밖에 없는 것.
흰색 셔츠에 검정 슈트.
두건과 선글라스.
초록색 양말.
그들은 표범 같았고 사자 같았고 악어 거미 뱀 조랑말 나비 같았다.🤩
인사할 때 모두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보이며 웃어준 것마저 감동.
마지막 몸짓. 커튼콜 때 촬영 가능하다고 해서 이따금 보면서 행복해지려고 찍음.
* 송도 가서 파스타 먹고 집에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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