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강좌에서 (메일로) 주고받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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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이야기'는 빼고 제가 보낸 답장만 공개합니다:)



(1) 조OO 선생님


*3월 4일 목요일

오늘 본의 아니게 수강생분들의 나이를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ㅎㅎㅎ

(중략)

선생님의 강의 경력20년 넘는다니 '사회생활' 에서 저는 깨갱이네요. 이제 등단 6년차 프리랜서로서 (날마다 달마다) 고민이 많습니다.

사회생활 선배님, 대 선배 교육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유익했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스타트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안심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재수강생 분들 덕분에 봄강좌를 개강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 몇 명 더 신청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신청자가 적어서 조금 의기소침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번 수업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절로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줌 서비스 1년권 끊었는뎅!!)
 
그래도 저를 아는 분들과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네요! 종료 후 카톡에 한 줄씩 남겨주는 멘트가 정말 힘이 됩니다. '오늘도' 즐거웠다는 그런 소감이요. 규칙적인 생활(다짐)이 자주 무너지고 하루 건너 한 번씩 우울증과 싸우는 일상이지만 이 수업만큼은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봄에는 읽기와 합평이 번갈아 진행되니 또 다른 긴장과 만남의 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 나이 많죠?ㅋㅋㅋㅋㅋㅋ
뭐 어쩌겠어요.(응???)
엊그제는 도서관에서 '비혼' 관련 책을 잔뜩 빌렸답니다.
그 주제로 소설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요.ㅎㅎ

한 주 건강하게 보내세요. 메일 너무 감사해요:)
다음 주에 뵈어요.^^


* 3월 15일 월요일

늘 '이재은 선생님께'로 정중하게 시작하는 선생님의 메일에 저는 한 번도 'OOO 선생님께'로 답장을 쓴 적이 없네요.

저는 관계를 제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사람이고, 내키는 대로 친한 척을 하거나 거리를 두곤 해요. 그래서 '저 사람 뭐지?' 하는 눈총을 자주 받았어요. 특히 예의를 차려서 말하는 데 약하고 그런 걸 낯간지러워하는 성격인데, 그래도 이번에는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

OOO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키보드 'ㅇ'가 빠져서 메일이 늦어졌다는 말씀이, 그 모음을 끼워 넣고 나서야 글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가 뭔가 '소설적'이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선생님의 소설이 기대된다고 말해도 될런지요?ㅎㅎ

저는 2006년에 중앙신인문학상 최종심에 올랐었어요. 박스 안에 이름과 제목이 실려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이 심사평에 언급하기까지 했죠. 그때 주변에서 한끝 차이로 떨어졌다고 하기도 해서 저도 제가 대단히 운 나쁜 경험을 했구나 했는데 지나고 나니 좀 오만했더라고요. 그 소설 하나 붙잡고 다음 해 내고, 또 내고... 제 문장의 장점을 찾지 못하고 '그 소설'의 탈락만 서운해했던 것 같아요. 몇 해 동안. 그 시간에 '그 작품'에 비견하는 새 소설을 쓰지 못했고... 저는 점점 뒤처졌지요. 

몇 년 후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면접 때 할 말이라곤 "몇 해 전 최종심에 올랐었다"밖에 없었어요. 그즈음에, 그후에 공부하면서 알았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대학원에 들어가니 그런 친구가 정말 많더라고요.-_-;;; 대여섯 번 최종심에 올랐지만 등단하지 못한(이런 부정어를 용서해주세요) 친구도 있었고... 흔히 등단에는 운과 실력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자주 떠올리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 저의 '등단'을 떠올리면 아직도 기적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맞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저도 놓지 못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얼마나 자주 포기를 떠올리고, 실천했게요? 도망가고, 끙끙 앓고, 내팽개치고... 저는 직업도 없이 백수로 그런 짓을 반복했으니 가족들 원망도 매우 컸어요. 변변치 못한 장녀. 병이 깊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제가 종종 떠벌리는 알코올!) 

간신히 책도 내고 지금 이 자리에 있지만 이놈의 불안은 끊이지 않는 것 같아요.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안 쓰면 안 될 것 같은, 놓으면 죽을 것 같은 정신적 불안. 어떻게 먹고 살지? 하는 현실적 불안. 저는 이제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 '쓰는 작가'가 꿈이에요. 인정받는 작가가 아니라 '함께하는 작가'가 됐으면 합니다. 

JH 씨, MJ 님, JG 님, SY 님, MH 님, 그리고 선생님까지, 여섯 분이 어떤 마음으로 제 수업에 시간을 쓰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 중 절반 이상은 '소설 앓이'를 해보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는 '문학병'이라고 부르겠지만 그러면 너무 병 같으니까...^^ 몸을 해치는 병이 아니라면 살면서 하나 정도 '앓이'를 품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라요. 그래야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제 자랑만 하거나 남이 만든 스토리를 전하는 삶은 시시하잖아요. 이야기는 스스로 만든 것이어야 재미있죠.

잘 시작하셨습니다.
'소설 앓이'를 권하는 투로 말했지만 고통보다 즐거움을 더 느끼시길 바라요. 

제가 솔직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전 숨기는 게 엄청 많답니다. 부끄러워서 말못하는 과거가 얼마나 많게요. 그런데 그걸 이겨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냥 그게 저니까, 안타까워도 조금 봐주려고요. 그럼에도 문득 타인에게 '저 사람, 솔직해서 좋네'라는 말을 들으면 더없이 기뻐집니다.
고맙습니다.

하루 세 줄이라도 꾸준히! 응원합니다. 
문학 공부에 끝이 있겠냐만은, 언젠가 그 '끝'을 느끼고 도약하는 날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때까지 제가 열심히 할게요.ㅎㅎ

목요일에 뵈어요!


**
3월 26일 금요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필사가 도움이 되신다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필사 덕분에 저도 요즘 일찍 기상하고 있는데요, 
불규칙한 수면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필사 문장 올리고 다시 잠들기도 합니다.ㅎㅎ

문학 필사 30일을 만들기 전,
저도 모 기관에서 하는 필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저의 느낌이 선생님이 남겨주신 소감과 비슷했어요.
선물받은 기분, 함께 하는 기분, 
낯선 문장을 만나는 기쁨 같은 거요.
꼭 전체를 찾아읽지 않아도, 
짧은 부분에서도 음미할 게 있고 배울 게 있구나 싶어서 뿌듯하더라고요.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당장 내 글에 활용할 만한 기법이 눈에 띄거나
이렇게 고치면 되겠다 하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진 않지만 저도 매일 손으로 문장들을 옮겨적고 있는데
아쉬운 건 제가 선택한 문구라서 새로움이 없다는 거예요.ㅜㅜ

여러 번 읽고, 프린트해서 보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오타가 없나, 코멘트가 제대로 달렸나 확인할 겸 
마치 제 소설을 수정하는 것처럼 질리게 보고 있습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즐겁게 참여하셨으면 합니다.^^


**
3월 26일 금요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필사반까지 신청하시다니...^^
이제 매일 만나겠네요. 

꾸준히 필사도 하고 계셨다니 와, 역시 성실하십니다. 
이번에 문장력 필사30일 해보시고 혼자 할 때와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피드백 부탁드려도 될까요?
반영해서 더욱 좋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볼게요.^^

10명 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재 딱 열 명! 
하지만 그 중에는 우리 가족도 여럿 있다는 거 ㅋㅋㅋ

이번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오픈방으로 개설했어요. 
문자로 링크 남기겠습니다:)


**
3월 31일 수요일

합평작 분량은 걱정하지 마세요.
첫 시간에 짧은소설부터 중편소설까지 괜찮다고 말씀드렸으니 다들 이해하실 거예요.
지난 가을강좌에는 250매 정도 되는 중편을 내신 분도 계셨는 걸요.

발제문 맡은 JH 씨도 괜찮을 거예요.
3년째 한 학기도 빠지지 않고 제 강좌를 듣고 있어서 분위기도 잘 알고
열심히 하는 친구라 글도 잘 써올 겁니다.
하필이면 결혼식 이틀 전이긴 하지만... 
본인이 날짜를 바꿔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책임을 다하지 않을까요?
(결혼을 안 해봐서 이틀 전에 무슨 일을 하는지 저는 몰라요 ㅋㅋㅋ)

단톡방에 소설 올리시고 양해 메시지 한 줄 남기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보통의 단편 분량이 80매 내외니까 
합평 받으실 작품을 반으로 줄일 건지, 
중편으로 늘리실 건지 사전에 말씀해 주시면
작품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길게 쓰는 게 어려워서 중편 도전할 생각은 못했는데
할 수만 있다면 중편으로 완성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요새는 중편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그또한 매력적이지 않나 싶어요.

이따금 벚꽃 사진이 단톡방에 올라와서
봄이구나... 봄, 봄 할뿐 나가진 않고
자꾸만 책상 앞에 매여있어요.
실패하고 실패하고 다시 쓰고...

매번 메일로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올해 들어 제가 조금 우쭐해진 건 아닌가 걱정됐는데요
아래한글 창을 열고 몇 줄 적다보면
그럼 그렇지, 글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우쭐은 개뿔, 하게 됩니다.
(나는 아직 무수한 돌멩이 중 하나일 뿐이다!)

강사 자격으로 매주 줌 화면을 띄우고 있지만
저도 수강생 분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 감사드립니다.

**

5월 5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조OO 선생님!

필사반 2기 신청 감사합니다:)

메일 확인 후 바로 브런치 들어가서 글을 읽곤 와, 와,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선생님이 훌륭하니까 제자도 훌륭하구나...
멋지다, 종OO 씨!
그런 제자가 더 잘 되라고(?) 필사반을 소개한 조OO 선생님은 더 멋져!

대만에서 참여하는 필사반 학생이 생길 줄, 정말 꿈에나 생각했을까요.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번역가가 꿈인 외국인을 만나게 되다니 제가 다 떨립니다.
두 분의 미래를 상상하니까(작가-번역가) 너무 부럽고 샘나고 질투나고(동어반복 강조기법).....
귀한 인연을 '문학 필사반'까지 이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필사 2기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5월 20일 목요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다른 분들 이야기를 못 듣고 저 혼자만 말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네요.ㅜㅜ
제가 좀 더 여유를 갖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물으면서 여쭤봤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어쩌면 조금은 서운하셨을 수도(선생님도, 특히 JH 씨도?) 있을 것 같아요.ㅜㅜ 

글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글 속에 빠지는 게 맞죠.
인물에 전적으로 공감(이해)하는 것도 맞고요.
그런데 그만큼 독자가 따라가느냐 아니냐를 타인의 눈에 비춰봐야 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런 면에서 저는 뭐가 됐든 선생님의 실력과 노력, 용기에 무한한, 아니 존경스러운 인사를 건넵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잘하고 계세요!

전에 저에게 청소년 장편 응모했던 적이 있었다는 말씀도 해주셔서, 
그리고 제 수업을 좋아해주시고 믿어주는 것 같아서 오늘 조금 과하게 팍팍 의견을 전달했네요.
조금 거리를 두고 인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까 제가 챕터를 나누고 제목을 붙여보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아웃라인이 잡히면 아래한글 안에서만 글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지 마시고 프린트한 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소제목 아래 붙여보시는 건 어떨지 권유드립니다.
제 글로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전 선생님보다 재능이 없어요! 어떻게  장편을 몇 번이나!!) 어떤 책에서 괜찮은 방법으로 쓴다는 이야기를 읽었거든요.^^(정확히는 제가 한번 언급했던 알렉산더 지의 <자전소설 쓰는 법>에 나와요)

필사에 대한 의견 또한 매우 정확합니다. 와...
초보자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언급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2기에도 즐겁게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제자분 종OO님 글씨 보고 정말 놀랐네요.
잘 하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완전 멋짐...!!

(중략)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된 1월부터 수업에서 웃을 일이 참 많고, 그만큼 분위기도 명랑해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저랑 1:1 소통하는 느낌으로 제가 물어봐야 대답하는데 선생님은 솔직하게 먼저 말씀해주시는 한편 늘 함께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챙기시잖아요. 정말 고맙고 덕분에 저도 많이 따듯함을 느낍니다.

여름 강좌도 함께 하게 되어 반갑고 감사해요.
MJ 님과 마음을 모아 보내주신 스타벅스 쿠폰도 정말 귀하게 사용하겠습니다:)


(2) 김OO 선생님

** 
5월 17일 월요일

안녕하세요, MJ 님!
아주 긴 메일을 보내주셨네요.

지난해까지는 그때그때 수강생들을 모아서 수업을 진행하는 느낌이었는데
겨울강좌를 거쳐 봄강좌를 지나오면서
'특정인'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믿음이 짙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알려드릴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말할까 고민하지만
합평할 때는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한 정말 커서 실은 혼자 전전긍긍할 때가 많답니다.(뭐가 맞지? 뭐가 옳지? 뭐가 최선이지?)

지난번 MJ 님과 HS 님 작품 워크숍 시간에
제가 한참 떠들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너무 상처 받지 마시고...” 한 거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실컷 도움 되는 이야기를 했으면 그렇게 조언한 저 자신을 믿어야 하는데
대체 왜 상처 어쩌고 하는 말을 했을까,
상처 받지 말라는 건 상처를 줬다는 걸 전제로 한 것 아닐까,
상처 어쩌고 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선’에서 ‘최선의 합평’을 한 뒤
깔끔하게 마무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아아아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튀어나온 말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 배려 때문에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 오늘은 단톡방에 아무도 글을 안 올리지?
삐쳤을까? 실망했을까?
그렇지만 제가 ‘이성’을 잃고 곡해할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응?)
괜히 짐작하지 말자 싶어 일찍 잠을 청했지요.

다음 날 HS 샘이랑 한참 통화하면서
어떤 연유로(맥락 없는 이유) 내 강의에 별 문제가 없었다는 걸 알고
마음을 풀었네요.ㅋㅋㅋ

그럴 때 누군가 “과하지 않았어요. 나름 분석적이었어요” 말해주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런 걸 예민하다고 해야 할지 마음이 약하다고 해야 할지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지...-_-;;;;


상처라는 단어를 썼지만,
제 경우를 돌아보면 합평 때의 ‘상처’는
잠깐 자기한테 실망하는 거거든요. 
'에이...잘 하고 싶었는데 이것밖에 안 됐군.' 하는...
저는 그랬어요.
합평 받고 많이도 울었지만 선생님이 아무리 험한 말을 해도
저는 정말 제가 미워서 울었...^^;;;

근데 '선생' 역할로 어떤 말을 전하는 처지에서도
저한테 실망하는 일이 더 많은 건 웬일일까요.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나?
이것밖에 칭찬을 못 하나?
이 정도밖에 못 가르치나? 자책하는 저를 봅니다.

실력, 카리스마, 친절...도 좋지만 다 떠나서 진심만은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문학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진심.
강의를 즐겁게 하고 있다는 진심.

살면서 종종 솔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건 저의 일부 모습이고
전 컴플렉스가 아주 많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영 감추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쩌면 '그걸' 써야 게 바로 문학일 텐데 저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또 괴로워요.

2021년 1,2월의 겨울강좌, 3,4,5월의 봄강좌를 지내오면서
소설에 애정 많은 MJ, YM, JH 씨 등을 만나면서
그들에게는 나를 덜 감춰도 되겠다, 덜 꽁꽁 싸매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런 만큼 그들도 저를 믿어준다는 마음이 들었고,
아마도 작품에 대한 토론과 평가하는 시간을 넘어
글을 매개로 인생과 사람을 나누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대단한 소설가도 아니고 문학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글쓴이가 '자유자재'로 자기 기술과 사유를 펼치기 전까지, 
그런 과정의 단계가 있다면 사다리를 파악할 정도의 깜냥은 있고,
어느 높이까지는 이끌어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런데 글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삶을 건드리게 되는 면이 있어서
제가 ‘문학적인 것’을 언급할 때, 
MJ 님  말씀처럼 '할 수 없는 영역'의 불가해함을 느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래서 해볼 만한 거 아닐까요.
우리를 괴로움에 빠트리면서도 살게 하는 어떤 것...(아 달콤한 포장!)

(중략)

잘하지도 못하면서 집착하는 이유는
문학이 ‘성취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사랑의 태도’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제 친구만, 제 자식만, 제 가족만, 제 나라만, 자기와 비슷한 부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늙고 약하고 가난하고 작고 빼빼 마른 어떤 것을 사랑해,
미움과 멸시, 증오의 세상이 아닌
돌봄과 공감, 이해의 공기를 퍼트려 조금은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런 역할을 문학이 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사회에서 들고나는 이슈를 그대로 글로 쓰면 안 되는 거죠.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를 얌전히 따르는 게 아닌
'아비를 왜 아비라 부르지 못해?' 질문해야 하는 거죠.
질문의 자리에 글쓴이의 관점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관점'은 보는 방법이잖아요.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작가의 세계관이 되는 거고...
그러니 태도를 언급하게 되고, 자세를 지적하게 되고,
‘바른 마음’이 있어도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불협화음만 낼 뿐이니
우리가 문장부터 배워야 하는 거고...ㅎㅎㅎ

(중략)

지난해 가을에 했던 <처음 쓰는 소설>도 그렇고,
여름에 짧게 진행할 <문장 이론>도 그렇고,
자기 방식대로 이어가는 글쓰기 스타일을 한 번쯤 탈피해 본인 글을 새롭게 살피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했어요.
결국은 이런 시간, 저런 시간 거치고
어느 때 오! 좀 알 것 같아!하는 시기도 지나고
아니네, 안다고 착각했네, 하기도 하고
쓰고 또 쓰면서, 고치고 또 고치면서(이놈의 거듭남!)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거겠죠.

저야말로 자주 종종 합평작을 내는 수강생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이 들기도 하고
무슨 슬럼프도 아닌데 글쓰기를 못하고 있을 때면 남의 글은 무조건 대단해 보여서
와, 정말 멋지다, 등단한 나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요.^^;;;

어렵게 다시 시작하셨으니(소설을 가볍게, 재미삼아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문학을 만끽하길 바랍니다.

6개월 과정.ㅋㅋㅋ(꿈의 아카데미)
전 뭔가 패턴처럼 반복되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라
여름 강좌에 문장 이론을 넣어봤는데 합평이 없어서 아쉽다고 하니
그 말씀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문학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론도 하고 워크숍도 하고 읽기도 하고 처음쓰는소설도 하고 그러면
참 좋을 텐데 하는ㅋㅋㅋ
개강 직전에 간신히 강의 확정하는 거 아시잖아요.ㅎㅎ
저 말고 강의하는 사람이 분이 많으니 다들 어딘가에서 좋은 시간 갖고 있겠죠!

제안이나 의견 있으면 언제든 전해주세요.
긍정적인 자극이 됩니다.

일단은 목요일, 봄강좌 마지막 시간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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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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