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늘이 있음에 감사한 삶, “나는 행복한 지휘자다” 인천시립교향악단 이경구 부지휘자
음악보다 삶이 우선인 사람.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인 이경구 부지휘자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항상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며 또 하루를 살 수 있음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행복한 지휘자 #인천시립교향악단 의 #이경구부지휘자 와의 인터뷰. 지금 바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글 이재은(소설가) | 사진 유창호
이경구 지휘자를 만나러 가기 전, ‘정보의 바다’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이, 학력, 경력 같은 기본사항은 쉽게 낚았다. 그걸로는 대화를 이끌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나만의 이슈가 필요했다. 좀 더 시간을 들이기로 했고, 바닷속을 이리저리 유영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레카까지는 아니지만 잠시 후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거야!
블로거들은 뉴스보다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뛰어나고, 고맙게도 그들이 남긴 포스팅에서 건질 만한 게 있었다. 이경구 지휘자는 오랫동안 새얼문화재단의 ‘가곡과 아리아의 밤’을 이끌었는데 그곳에서 그를 만난 사람들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지휘자라고 하면 약간 진지하고 엄격한 느낌이 있는데 이경구 지휘자님은 달랐어요.”, “출연자들과 웃으며 호흡하는 장면이 참 좋더라고요.”웃는 지휘자, 이경구. 이슈는 그걸로 충분했다.
좋아서 하는 일
이경구 지휘자는 28세에 인천시립합창단 최연소 상임 지휘자가 됐다. 윤영진에 이은 제2대 지휘자로, 당시 비상임이었던 보직을 조례 개정을 통해 상임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7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인천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로, KBS열린음악회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 시간들을 합치면 삼십 년이 훌쩍 넘는다.
그는 단원 개개인의 성격과 영역을 존중하는 데 넉넉히 마음을 쓴다. 본인의 주장을 관철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어른’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리더는 무작정 이끄는 자가 아니라 공간에서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다. 지휘자가 무대를 통제하지 않고 부드럽게 아우를 때 최고의 하모니가 탄생한다. 누군가의 연주가 조금 빠르다 싶으면 가만 늦추고, 느리다 싶으면 살짝 당기는 일은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지휘대에 서면 일부가 아닌 전체를 품어야 한다.
인천혜광학교에서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평택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가 혜광학교 오케스트라를 맡았을 때 단체는 여러모로 빛을 발했고, 청와대의 초청 제안을 받기도 했다. 20대부터 몸담은 로고스 합창단도 ‘좋아서 하는 일’ 리스트에서 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저는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걸 돌려주는 일이 뭘까, 음악으로 기여한다고 할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섬기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해요. 로고스 합창단은 제가 40년 넘게 속해 있는 곳인데 미자립교회에 가서 찬양하고 헌금도 합니다. 시장통에 있는 작은 교회에도 가고, 개척교회도 가고요. 목사님들 중에 자그마한 예배당이 신도로 꽉 차는 걸 보고 싶다는 분이 계세요. 그럴 때 저희 합창단원 2~30명이 방문해 말씀도 듣고 찬송가도 부르고 오죠.”
틈틈이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그지만 이경구 지휘자는 아직도 내가 진짜 음악을 좋아하는지, 순수한지, 혹시 굳어있지는 않은지, 직업꾼 같지는 않은지 스스로 묻고 반성한다.
코로나 시대의 연주
코로나19 이후의 변화가 궁금했다. 인천문화예술회관도 지난 6월 무관객 온라인 공연을 열었다. 관객과 소통했던 역사 때문인지 이경구 지휘자에게도‘무관객’은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남모르게 보이지 않는 저항이 생기는 것도 같았다. 관객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긴장했고, 촬영 카메라가 감시카메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악보를 함께 보며 짝지어 플레이하던 단원들은 올해 오롯이 혼자가 됐다. 띄엄띄엄 의자를 두고 거리를 벌렸다. 상황이 달라지면 눈빛도, 몸짓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공연을 중계하는 동안 이경구 지휘자는 잠시 감각이 곤두서기도 했다. 그때 그는 조금 외로웠을까.
환경의 변화는 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 나는 SNS에서 본 합창 영상을 언급했다. 노래 부르는 모습을 촬영해 여러 개의 영상을 하나의 화면에 담은 거였다. 수십 명의 얼굴이 만났다 헤어지면서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의 합창’은 기발하면서도 신선했고, 이전에 본 적 없어서 눈에 띄었다. 그런 영상을 아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을 셈이었는데 의외로 제작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유튜브에서 재생한 파일은 교회 성가대원들과 함께 제작한 영상이었다. 소수의 성가대원이 찬송을 녹음해 단원들에게 보내면 단원들이 그 음악을 듣고 자기 노래를 했다. 모든 성가대원의 목소리가 영상에 삽입된 것은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은 하나가 됐다.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서 둥근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화면 속 이경구 지휘자는 앵글 밖으로 동작이 넘어가지 않도록 움직임을 줄인 미니멀한 연주를 했다. 지루할 틈 없이 매끄럽게 리듬을 탄 편집도 훌륭했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며 사랑과 은총 속에 있는 그는 곱디고왔다.
인천시립교향악단의 8월 공연은 시벨리우스에서 모차르트까지 시대별로 거꾸로 내려온다. 대규모 편성에서 코어만 남기는 형태로, 긴 곡이 아닌 20분 내외의 짧은(?) 교향곡으로 관객과 만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악도 달라집니다. 요즘은 대규모 편성이 많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모차르트 교향곡 36번 ‘린츠’가 포함돼 있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소규모 편성입니다. 오보에와 파곳, 트럼펫, 팀파니 현악군으로 구성했어요. 관객을 다수 모시지 못하는 여건을 고려해 기존과 달리 오밀조밀한 연주를 선보이려고 합니다. 가장 간결한 게 가장 아름다울 수 있거든요. 뷔페보다는 단품이 유난히 맛있는 집을 선호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의 삶은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지만 그는 음악보다 삶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부터 행복해지는 일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 아닌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무엇 때문도, 누구 때문도 아닌,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잠깐이지만 한 존재에 귀 기울였다. 이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었다. 그에게 ‘나는 항상’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오늘’에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항상 오늘이 있음에 감사해요. 또 하루를 살 수 있음에, 살아있음에 감사하고요.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잖아요.”(웃음) 폼 잡기 싫어서 슈트 대신 카디건을 걸치고 나왔다는 그, 내가 만난 그는 웃는 사람 이경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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