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역사’ 토크에서 만난 이상엽 사진가
3년 전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사진책을 많이 빌려봤는데 이상엽의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글 잘 쓰는 사진가가 있다니... 멋 부리는 글은 질색인데, 예쁜 포토에세이도 끔찍이 싫어하는데 그의 책은 달랐다.
2014년이었나, 류가헌에서 하는 ‘변경’ 사진전은 남동반 사람들과 함께 봤다. 내가 읽은 작가 이상엽과 사진가 이상엽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진 참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변경’이라는 주제를 장소와 인물로 표현한 사진이었다. 군더더기 없었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진이 있다. 방명록에 내 이름을 적고 왔던가... 이전에 DMZ를 취재한 뒤 ‘이상한 숲’이라는 전시를 했는데 그게 변경 시리즈의 첫 번째라고 한다.
그가 변경 3부작의 마지막 ‘변경의 역사’를 오픈하고, 토크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오락가락 비가 오고, 번개도 내리쳤는데 약속하지 않았다면 혼자서는 서울행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감사하다. 잘 봤고, 잘 들었다. 짐작한 걸 확인했고, 듣고 싶은 대답을 들었다. 이상엽 작가는 또박또박 말했고, 호흡도 일정했다. 질문을 잘 이해했고 핵심만 콕 집어 대답했다. 대답은 길지도 짧지도 않아서 아쉽지도, 지루할 틈도 없었다.
그는 역사+글쓰기+인문학을 접목한 사진을 찍는다. 암실에서 채도와 콘트라스트만 조절했다는 사진은, ‘좀 과한데?’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으나 그가 프로작가라는 걸 감안하면 시대를 알고, 흐름을 탄다는 것의 증명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은 좀 촌스러워서 ‘계몽주의’적인 성격이 있다며 내가 납득한 걸 남들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지금은 계몽이 타자에 대한 오만불손한 느낌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지만 거꾸로, 자신 역시 계몽돼있지 않은 자로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쓸 때도 수미일관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고, 스스로 명료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이날은 이상엽의 사진 두 점에 그림으로 멋을 살린(?) 강홍구 작가도 함께 했는데 글과 사진의 관계에 대해 한 말(내가 질문했다)-“글을 잘 쓴다고 해서 사진이 좋아지진 않지만 글을 쓰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명료해진다. 명료하지 않으면 반성 능력이 떨어지고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글쓰기는 꼭 필요하다.” 중에서의 ‘명료’와 이상엽 작가가 말한 ‘명료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어렵게 말하고 애매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도 잘 몰라서 그런 거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요즘 나는 사진과 글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사진에는 글이 꼭 필요한가, 사진은 이미지로 말하는 장르 아닌가? 글이 필요 없다면 사진가들은 왜 캡션을 달고 제목을 붙이고 작가노트를 쓰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글이 사진을 ‘설명하게 하는 것’에는 나도 반대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재미가 없어서다. 글이 이미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독자(관객)는 같은 걸 두 번 보는 셈이 된다. 사진과 텍스트는 데칼코마니나 도플갱어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이미지가 주지 못하는 최소한의 정보를 위해 캡션이 필요하고, 관객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업 의도를 설명하는 글을 쓴다면 사진 작업에서 글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진전에서 엉망으로 쓴 작가노트를 보면(나름 최선을 다했겠지만-외래어 남발, 철학가들의 어려운 문장을 그대로 인용, 비문 가득) 한숨이 나왔다. 대개 작가노트는 문 옆에 붙어있기 마련이라 별 볼 일 없는 작가노트를 읽고 나면 사진에 대한 기대도 생기지 않았다. 내게는 맞춤법, 띄어쓰기도 중요하다. 인화하고 액자 거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우리말에도 한 번쯤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바람. 더 심한 건 작가노트 없이, 정리되지 않은 해설이나 비평을 크게 뽑아 붙여놓는 거다. ‘나는 내 목소리 없이 권위에 기대는 작가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상엽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나는 글쓰기를 먼저 했다. 기사와 르포를 쓰다가 시각매체에 매력을 느껴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한겨레21 등에서 일했는데 두 사람이 하는 일을 혼자 하니 찾는 곳이 많았다. 내게 글과 사진은 ‘테크닉’이었다. 나는 글이 사진을 보조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진에 최선을 다하지만 글은 아니다. 내가 어떻게 문학가들을 따라가겠나. 글과 사진은 상보적 역할을 한다. 글이 시각 이미지를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여긴다. 나는 글쓰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지난해 받은 원고료도 사진보다 글이 더 높았다고 한다.
“2001년에 첫 단행본을 냈다. 책 쓰는 사진가였다. 당시에는 텍스트가 많아야 책을 내줬다. 글 안 쓰는 작가는 책을 안 내줬다. 첫 책은 1200매였다. 지금까지 혼자 펴낸 단행본만 23권. ‘순수한 사진집’은 이번에 펴낸 ‘변경의 역사’ 포함 2권뿐이다. 사진가들도 ‘순수 사진집’은 갖기 어렵다. 이번 책에 넣기 위해 500매 정도를 썼는데 짧게 줄이라고 해서 힘들었다. 또 다시 글이 많은 책을 준비하려고 한다.”
“사진은 평면 이상을 볼 수 없다. 상상으로 보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전시에서 장문의 캡션을 단 것은 사진 표면을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진으로 읽어낼 수 없는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요새 사진전에는 캡션이 별로 없는데 다큐도 알아서 감상하고 상상하라는 건가? 다큐는 시공간에 관한 것이다. 베냐민이 앗제의 사진을 보고-시공간이 모호하면 네 사진은 다 귀신 나오는 거다-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거다.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오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다큐와 글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다큐의 기록성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사유의 문자화로 수 천 년 전부터 행해온 것이다. 글을 쓰고 말하는 것이 어떤 예술에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른다섯쯤 된 사람에게 맨날 로버트 프랭크가 어쨌니 브레송이 어쨌니 얘기해봐라, 나를 꼰대라고 할 거다. 내 사진을 하고, 내 사진을 말해야 한다. 나는 회의하고 반성하는 회의주의자가 되고 있다. 끊임없는 공부를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멈추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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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을 낼 때는 에디터를, 사진전을 할 때는 큐레이터를 존중한다. 돈대를 보는 게 아닌, 돈대에서(그때 그 시절 거기 섰던 사람의 심정으로, 지금의 해군들 시선으로) 바깥을 본 사진들. “우리는 시간이 매끄럽게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물리학에선 그렇지 않다. 끊어짐이 있고, 고르지 않다. 그런 비가역성, 불연속성을 표현하고 싶어서 사진을 잘라서 걸었고, 그 사이에 여백도 두었다. 누군가는 액자가 쪼개져 있으니 멋을 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과거의 선생님들(?)은 안 좋아했을 거다.(웃음)”
예전에는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번 작업은 ‘고려역사재단’에 예술인 공공근로 파견사업으로 행해졌다고 했다. ‘예술인 공공근로’라니 왠지 서글프게 들리는 단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 고려역사재단 학예사들은 문헌, 학술에 집중하고 그는 당대를 통해본 어두운 변경의 역사를 꿰뚫었다. 정보가 많이 없어서 발굴하듯 다녔다고.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강화에는 현재 54개의 돈대가 있고 현재 10여개의 돈대만 사용된다.(해병대) 나머지는 파괴되거나 폐허로 남았다.
아트다큐,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이상엽 작가 역시 그런 표현은 곤혹스럽다고 한다. “나는 다큐 문법에 충실하다. 사람, 사회적 변화, 고통에 천착한다. 2010년 이후의 우리 사회는 지난 IMF보다 더 강력하다.(암울하다) 2010년 이후 사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회가 달라지는 모습, 즉 내용에 고착돼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4년 사진공간배다리에 오정식의 ‘돈대’가 전시된 적 있는데 그의 돈대와 이상엽의 돈대는 많이 달랐다. 흑백과 컬러라는 점, 돈대를 바라보고 찍은 것과 돈대에서 밖을 본 것, 그리고 사진이 철학적으로 보이느냐 사실적으로 보이느냐 하는 점 등등.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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