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가난에 대한 짧은 생각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 앞에 고기와 과일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상황은 영양부족으로 깡마르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소년의 이미지와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어처구니없어 보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이 현실은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출처:부산일보
이탈리아 출신 사진작가가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인도의 비참한 빈곤 실태를 ‘꿈의 음식’ 시리즈로 공개했습니다.
이 사진은 뜻밖의 비난에 직면합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상상해 보라”며 연출한 데다, 사진에 나온 음식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가짜 음식을 앞에 놓고 배고픈 소년들을 놀렸다는 비난이 일었고, 아동 인권을 배려하지 않고 가난을 전시에 이용한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빈곤 포르노’는 가난을 구경거리로 묘사해 자극을 주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말합니다. 논란이 일자 작가는 “서구의 음식 낭비를 도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년들을 소품으로 대상화했다는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출처:FOTOFEST 홈페이지
2014년 에버 하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마을에 거주할 때 이용할 고급(?) 리조트를 찍었습니다. 숙소는 남아공의 가난한 시민들을 수용하는 구조와 유사한 패치 워크 방식으로 조립됐습니다. 이 마을은 실제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적, 시각적으로 새로운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급’ 리조트와 그곳에 머무는 고객은 거짓 서사로 충돌하고, 보는 이들은 자신들의 여행, 혹은 눈요기 관광에 물음을 던집니다.
최근 인도 뭄바이의 한 빈민가에서는 주민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출시됐습니다. 관광객은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을 배정받고, 13명의 가족과 사는 주인집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화장실은 50가구가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죠. 숙박비용은 하룻밤에 우리 돈으로 약 3만4000원.
‘슬럼 호텔’ 아이디어는 네덜란드 출신의 NGO 활동가 데이비드 비들(32)이 냈습니다. 2015년 싱가포르에서 빈곤 퇴치 활동을 하면서 인도인 라비 산시를 만났고, 그가 인도 현지에서 방을 제공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여행객 신분으로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고, 그 추억을 계기로 이런 호텔(?)을 기획하게 된 겁니다. 산시는 손님들을 위해 TV와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슬럼가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입니다. 데이비드 비들은 슬럼 지역을 몇 시간 동안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며 슬럼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주민의 삶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1885년 뉴욕의 부유층들이 파이브포인츠 슬럼을 구경하는 모습
슬럼 투어는 오래된 논쟁 대상입니다. 빈곤의 이해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측이 있는 반면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습니다. 인도의 빈민가 중 하나인 다라비 마을의 슬럼 투어 여행사 매니저 아심 사이크는 “슬럼가가 더럽고 범죄가 만연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보통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여행사는 수익의 80%를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 있습니다.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에서 자란 케네디 오데데는 “관광객들은 이틀 동안 굶주린 나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며 “그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우리는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했습니다. 그는 “빈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슬럼 투어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슬럼 투어는 1880년대 런던과 뉴욕의 상류층들이 슬럼가를 돌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 데서 유래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1980년대 백인들이 흑인 거주 지역을 돌면서 ‘흑인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투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슬럼 투어가 관광 상품으로 상업화된 거죠.
우리의 가난을 구경하신다고요?(https://story.kakao.com/_cWteQ6/EBSQCeeevd0) 중에서
출처:스브스뉴스
인천 동구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생활체험관으로 조성하려 했던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출처:경향신문
2015년 인천 동구청은 괭이부리마을에 쪽방촌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오면 쪽방촌에서 1만원에 1박을 하며 ‘가난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죠. ‘가난을 상품화하려고 한다’는 비난에, 괭이부리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동구청은 결국 한 달 만에 계획을 철회됐습니다.
‘테이프 붙인’ 운동화를 아시나요.
미국 온라인 쇼핑몰 노드스트롬에서 판매되는 이 운동화는 한화로 약 59만원입니다.
출처:연합뉴스
지난 9월 22일 가디언, 타임 등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명품 운동화 브랜드 골든구스는 ‘구겨지고, 테이프로 이어붙였다’는 소개와 함께 우중충하고 닳아빠진 것처럼 보이는 운동화를 출시했습니다. 복고풍의 서민 패션을 차용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고요. 곧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신발 살 돈이 없어서 비닐봉지를 신발로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이 ‘흉물스러운’ 운동화는 530달러에 팔리고 있다”, “가난을 미화하는 것이 언제부터 트렌드였냐”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가난을 의미하는 ‘푸어(poor)’를 응용한 신조어가 넘쳐납니다. 열심히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기 힘든 ‘워킹푸어(working poor)’,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느라 빚에 허덕이는 ‘렌트푸어(rent Poor)’, 사교육비를 대느라 소비 여력이 없는 ‘에듀푸어(education poor)’,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궁핍한 생활을 하는 ‘스튜던트푸어(student poor)’까지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성은 씨(35·가명)는 2살 된 딸이 있지만 아동수당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신청을 해도 소득 기준상 탈락할 것이고, 대상자가 되더라도 주민들에게 가난하다는 편견을 받을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동수당은 아동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아동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행정적인 불편함과 가난의 증표로 인식될 것을 염려해 신청을 꺼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북 장수군은 신청대상자의 99.3%가 신청을 마쳤지만, 서울 강남구는 73.4%에 그쳤습니다.
아동수당이 소득으로 나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김 씨처럼 오히려 받지 않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주택 가격이 높다고 알려진 지역일수록 신청률이 저조했다고 하네요.
가난하다고 해서 아이폰과 개를 곁에 두지 말란 법은 없다
출처:매일경제
A씨는 가난합니다. 홀어머니와 살고, 최저임금을 받는 직장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합니다. 밤에는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도 하죠. 당연히 집은 없습니다. 그의 삶에는 희망보다 절망의 그림자가 더 짙습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2017년식 ‘아이폰8’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아이폰을 찾는 사람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은 사회와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느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1940년대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발표한 ‘욕구의 위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먹고 마시고 자는 욕구보다 안전과 건강에 대한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낍니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욕구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우정, 사랑, 가정 등에 대한 소속감입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낙인’을 “어떤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기에 불충분한 상황적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가난은 낙인입니다. 당장 밥 먹을 돈이 없는 절대 빈곤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 역시 마찬가지죠. 가난은 타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며, 성실하지 않고 게으르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배짱이 같은’ 인간이라는 주홍글씨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이폰이 추방된 신분을 복권시켜주는 사면증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연출된 가난
2018.7.26, 부산일보
2. “가난이 패션이냐”…59만원짜리 닳아빠진 명품운동화 논란
2018.9.22, 연합뉴스
2018.9.15, 매일경제
2018.2.13, 네이버블로그(잡식성 아카이브)
2018.9.17, 경남신문
6. ‘뭄바이 슬럼가에서 아침을?’ 인도 슬럼호텔과 가난 투어리즘 논쟁
2018.1.30, 경향신문
2017.6.28, 스브스뉴스
2018.9.18, 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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