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6월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6월 26일 일기
오늘 아웃했다.
오리엔테이션에 불참하고
1차(4월) 연희의 식탁에도 날짜가 맞지 않아서 참석 못 하고
2차(5월)는 우울해서...
그리고 3차(6월)는 내일이라 못 간다.
어쩌다보니 연희 직원들과 얼굴 한 번 못 보고(표현이 그렇다는 거고 이야기 한 번 못하고) 퇴실하게 됐다.
지난주에 운영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는데 "통 얼굴을 볼 수 없다" "작업 잘 되시냐" 물었다.
얼굴을 안 비쳐서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열쇠 반납하러 사무실 갔더니
"귀신 안 나왔나요?" 묻는다.
네???
역시 소문대로 203호는 귀신 나오는 방이었어...-_-;;
어쩐지 정이 좀 안 가고 최근에는 가위까지 눌린...ㅋ
내가 좀 당황해서 "연희 모든 방에서 귀신 나오지 않나요?"
그랬더니 뭔 소리냐는 표정.
그럼 정말 203호만?
203호는 귀신 나오는 방이라고 소문이 다 돌았던 거야?
내가 정말 강심장이구나.ㅎ
짐 나르는 데 너무 힘들었다.
지난 가을, 겨울, 봄, 연속 세 번이나 집필실 돌아다니는 것도 좀 힘들다.(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
그나저나 집에 오니 좋구나.
짐정리는 차근차근.
연희의 대문을 통과하는데 아쉽고 찡했다.
2년 후에 또 입주할 수 있을까.
열심히 소설 쓰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추신:청산 언니가 가서 사진 찍어 보내라던 장희빈 우물터엔 못 갔네.ㅋㅋㅋ
+++
27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
4월 초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었다.
203호에 있다고 했더니 누가 "거기 귀신 나오는 방"이라고 말했다. 피식 웃고, 잊어버렸다.
16조각으로 나눈 피자 1조각 정도의 크기로 아침 나절 아주 잠깐 해가 들어왔다. 1층이라 블라인드 커튼으로 창의 10분의 8쯤을 가려야 했고, 대체로 어두웠다. 어디서나, 마음먹은 것 이상 잠은 잘 자는 편이지만 연희에 있으면 해도 해도 너무할 만큼 잠이 쏟아졌다. 이상하게 눈 뜨면 정오 전후였고, 보람있는 시간을 보낼 것 같다가도 낮잠을 잤고, 밤에는 또 말똥말똥해져 밤을 새우고는, 다음 날 또 늦잠을 잤다. 하루종일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게 들렸고, 보일러 모터 소리인지도 몰랐는데, 정말 지긋지긋했다. 소음에 눌려 그렇게 잠을 자야만 했는지도 모르지.
오리엔테이션도, 한 달에 한 번 있는 작가들과의 식사 자리도 매번 시간이 안 맞아서 못갔다. 수업과 강의가 하필이면 딱 그 날짜였다.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생겨먹은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창작촌에 들어와서 나처럼 방콕하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다들 '교류'라는 걸 한다는데.
아무튼 오늘 방 빼려고 빗속에서 짐을 나르고 사무실에 열쇠 건네러 갔다. "저, 203호..."까지 말했는데 "이재은 선생님이세요?" 깜짝 놀란다. 3개월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친 인간인 것이다. "연희에서 계속 지내셨어요?" "그럼요." "글 많이 쓰셨어요."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방에서 귀신 안 나왔어요?"
"네?????"
모르는 척, "연희에 있는 방 전부 귀신 나온다고 소문나지 않았나요? " 했더니 대답이 없다. 정말로 203호가 귀신 나오는 방이었던 것인가... 어쩐지 그렇게 잠이 오더라. 귀신하고 내내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했던 게 아닐까. 누구냐, 넌? 며칠 전에는 심하게 가위에 눌려, "신선한데? 이거 소설로 써야겠다" 했으나 눈 뜨니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좌절했었지... 가위 눌려 기진맥진한 것보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게 더 슬펐다.
7시에 종로구청 작은도서관에서 강의하고 빗길을 달려 인천 집에 도착한 뒤 네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짐을 옮겼다. 지난 가을 토지, 겨울 증평, 봄 연희... 내 집 놔두고 왔다갔다 하는 거 힘들다.(레지던시 지원 합격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감사한 줄도 모르고..ㅎㅎ)
빗소리가 그치고 새가 지저귄다. 연희에서는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었었는데. 지난 일요일 밤에는 2분기 입주작가들이 이별파티라도 하는지 우리 건물 전체가 들썩들썩. 잠깐 외로웠을까?
앵두가 열리고, 매실이 익고, 살구가 굴러다녔던, 연희의 봄, 안녕. 철문을 통과해 나오는데 아쉽고 괜히 나한테 짠했다. 2년 후에 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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