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필체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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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베껴 써보면 눈으로 읽는 것, 타이핑으로 치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몇 번이나 본 글이라도 옮겨 적으면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틀림없이 그렇다. 문학의 발견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발견이기도 하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문학 필사 20기 8일 차 글 중에서)

눈은 빠르다. 그걸 따라가는 손은 느리다. 이왕 시간을 쓰는 김에 저 문장을 따라 적고 ‘나’를 드러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비누 냄새를 맡아본 적 있는가. 그 냄새를 관심과 사랑의 전조로 여겨본 적 있는가. 나는 어떤 비누를 좋아하는가. 혹은 싫어하는가. 지금 쓰는 비누에서는 어떤 향이 나나. 어떤 색깔인가. 그 비누는 언제 샀고 얼마나 오래 쓰고 있는가…

오래 머물렀던 자리는 금방 떠나온 자리와 다르다. 여백에 볼펜이나 연필, 만년필로 적은 글자는 그 내용이 내 것이 아니어도 계속 보게 된다. 필체가 곧 나다. 낯설고 새로워 보인다. 낯선 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만날 때의 잠깐의 충만함.

아래 이미지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의 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나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쩔 수 없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어서
나는 문학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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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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