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삶이 있다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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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작가 리더 양성 과정을 진행 중이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14, 15강 강의가 끝나면 16강 성과공유회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다. 10월 한 달 토요일과 일요일에 몰아쳐 하루 네 시간씩 숨차게 달려왔다.

네 개 반 중 나는 4반을 담당한다. 열한 명의 참여자가 모두 적극적인 건 아니지만 성실히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몇몇 분을 의지해 여기까지 왔다. 환경 관련 스토리텔링 소개, 소설의 결말 상상하기, 칼럼이란, 패들릿 활용해서 글쓰기, 생태시 읽기 등등의 시간을 거쳐 지난 주말에는 참여자들이 쓴 환경축제 후기를 피드백했다. 듣기 좋은 말, 좋은 게 좋은 거지의 술수로 시간을 때우고 싶지 않았기에 내 스타일(?)로 최선을 다했다. ‘기초 글쓰기’ 강좌에서 너무 과한 지적을 한 걸까. 주술 불일치를 고치는 것 정도로 소박한 목표를 잡아야 했을까? 나는 상투적인 비유를 지적했고,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정확한 것이 곧 아름다운 거라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내가 이런 성찰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다만 그 시간에 충실했다.

다음 날 단톡방에 장문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고 소위 멘붕이 왔었다고. 내가 글을 이것밖에 못 쓰나 자괴감이 들어 괴로웠다고. 글쓰기가 두렵다는 고백과 자제하던 술까지 마셨다는 정보까지.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교수자인 나뿐만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수강생들의 피드백이 도움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가는 길에 글을 읽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아래의 글을 작성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실망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그러셨을 것 같아요.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마음에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겠죠.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원고를 다시 보고 저와 4반 참여자분들의 피드백을 상기하며 글을 수정해 제출하신 것 정말 대단합니다. 잘하셨어요. 제가 뭐라고 선생님의 삶과 생활에 ‘칭찬’이란 단어를 붙이겠어요. 하지만 배우고 고민하고 표현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따듯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수업 내내 집중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질문하고 있다는 것 잘 알아요.^^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태도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도 인생인데 아무렇거나 살아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거든요.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틀릴까 두렵다고 하셨는데 그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만큼 내가 선택하고 욕망한 글쓰기에 애정을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삶을 돌아보고 있다는 의미고요. 고민 없이 일필휘지로 써서 인정 받는 작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대가들도 그런데 초심자인 저희들도 노력해야죠.
잘 쓰셨다, 잘하셨다, 장점만 찾아 칭찬하는 거 저도 할 수 있습니다. ㅋㅋ 그럼 저 선생 착하다, 뭇 사람들은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건 제 신념에 어긋납니다. 가르치는 자의 직무를 등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제가 만나는 모든 분과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그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욕 먹을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잘 되도록 최대한 도와야죠.^^;;; 혹시 피드백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드려요.
대학교 2학년 학생들과 소설을 공부하는 날이에요. 학교 오는 길에 카톡을 읽고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에서 이 글을 씁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너에겐 문학이 뭔지, 글을 왜 쓰고 싶은지 물어보려고 해요. 우리는 왜 ‘내 것’을 만들고 싶어할까요. 나를 드러내고 싶어할까요. 웃고 즐기는 것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요… 저도 밤마다 술을 마십니다.ㅎㅎㅎ"

그분은 다시 댓글을 달았고, 그걸 4반 참여자들이 모두 읽었다. 이후 몇 개의 글이 더 올라왔는데 그중 일부를 허락없이 올린다.

“영어를 십년넘게 배워도 말 한마디 못하고 수학의 수포자로 살아가며 국어도 십년넘게 배웠는데 1편의 글쓰기를 쓰는게 왜이리 어려울까요? 교수님의 톡내용에 글과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부정의 개념은 아니고 오히려 이런 시간들을 할애해 주신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취미로 끄적이던 글에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심에 글쓰기의 자유로움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 감사합니다.”

다음 날 새벽 또 다른 분이 보낸 메일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글을 자주 써 보지 않아서..
그리고 핸드폰 기능이며 컴퓨터 사용에도 적응이 느려서 조금 벅차게 느껴지는 과정이지만
교수님의 가르치심과 말씀에 힘입어 다시 용기를 냅니다
부끄러운 글 늦게서야 전송하며... 교수님 많이 지적해 주시고 일깨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줌 속에서 뵙지만 열정적인 강의와 수강자들을 위하시는 배려의 마음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다가오는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문장 속에 삶이 있다.
좋은 글쓰기 선생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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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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