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문화기행소설] 프라하의 밤:밀란 쿤데라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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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아트인천 가을호
[이재은의 문화기행소설③]

프라하의 밤
:밀란 쿤데라를 추모하며



비둘기가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비둘기는 잠을 안 자나? 낮에는 먹이를 먹고 밤에는 사람을 인도하는 취미를 가졌나? 자정이 지난 시간. 이 밤에 혼자 걷는 동양 여자는 몽유병 환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타났겠지, 비둘기.
밤길을 걷는 내내 ‘한국에서의 나’를 생각했다. 출구 없는 동굴에 갇힌 사람처럼, 잠수복을 입고 맨땅을 걷는 사람처럼 축축하고 무거운 얼굴. 상담 선생님은 내게 불안과 긴장이 높은 성격을 타고났다고 했다. 일종의 만성 우울증인데 약보다는 식단 관리와 규칙적인 수면, 적절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미탈을 주세요…… 했더니 굼벵이 씹은 표정을 지었다. 돌팔이는 아니었다.
그럴 거면 굳이 프라하까지 올 필요가 있었어? 꿈 같은 여행을 왔으면 싫어도 신난 척 연기를 해야지. 비둘기가 물었고, 연극은 싫어, 내가 대답했다.
카렐교가 가까워지자 비둘기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어떤 소리에 반응하는 것처럼. 그때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기타 연주였다.
금빛으로 불을 밝힌 화약탑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깜깜하지는 않았다. 아치형의 육중한 화약탑을 통과하면 카렐교였다. 다리는 어제도 갔고, 낮에도 갔었다. 오늘 밤에 꼭 가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뒤로 불면이 심해진 듯했다. 호텔로 돌아간다고 한들 쉬이 잠들 것 같지 않았다. 홀린 듯 기타리스트에게 다가갔다. 이 밤에 이런 무심한 낭만, 혹은 무슨 처연한 고독인가 하고.
걸음을 멈추고 초록색 두건을 둘러맨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지판을 더듬는 왼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연주자의 손가락을 구경하는 것만큼 감동적인 일은 없었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갈 때면 언제나 앞 좌석을 예매했다. 지휘자는 물론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들의 손가락을 보기 위해서였다. 베토벤이든 밀러든 차이코프스키든 상관없었다. 나는 죽은 작곡가보다 살아서 그걸 연주하는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들 앞에서 내 눈빛은 고양이의 그것처럼 순하고 슬프게 변했다. 감탄으로 몸이 굳기도 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밤의 행인들은 기타 선율에 잠시 멈춰 섰다가 삼삼오오 제 길을 갔다. 블타바강 너머의 캄캄한 어딘가로.

낮이었다면 거리의 예술가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괜히 가방을 뒤적이는데 낯선 음성이 들렸다.
-선배? 태경 선배 아니에요? 저예요, 정세훈.
이상했다. 그저 두 개의 이름을 발음했을 뿐인데 세상 어떤 목소리보다 지치고 서글프게 들렸다.
초록색 두건을 쓴 남자가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이름을 듣고 금세 누군지 떠올랐으므로 나도 세훈을 향해 팔을 뻗었다.
-와, 오랜만이야. 기타 너무 잘 치더라.
칭찬으로 성원의 인사를 했다.
-여기서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프라하에는 어쩐 일이에요?
프라하가 너의 바운더리 안에 있고, 마치 내가 연락도 없이 나타났다는 듯이.
‘어, 그냥.’(정말 그냥일까?), ‘바람 따라 흐르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너무 식상하고 올드한 거 아냐?), ‘너처럼 나도 여행 왔지.’(그가 여행 중인 게 아니라면?), ‘머리 좀 식히려고.’(이런 말은 성실한 몰입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여유가 주어진 자에게만 쓸 수 있지 않을까?)
떠나기 전에도 ‘출발’에 대한 이유를 수없이 생각했었다. 한 가지 이유로 떠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워졌다. 생각이 많은 사람의 세상은 피부에 퍼렇게 피가 맺히는 싸움터. 또는 아수라장. 그는 세상을 미워하고, 그만큼 미움받는다. 그가 누구든 생각이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얼마간 불행하다.
-쿤데라의 도시에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어.
정세훈, 내가 그를 만난 게 언제였더라.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고 졸업했다. 편의점과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번역 에이전시 편집부에 입사했다. 번역가의 문장을 윤문하고 맞춤법 등을 교정, 교열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은 지루했고, 전혀 창의적이지 않았으며 나는 여전히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훈과는 시내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진행된 소설 창작 워크숍 과정을 함께 들었다. 소설 합평이 끝나면 매일 뒤풀이에 참석했다.
-태경 씨 소설은 오래 사용해서 지푸라기가 빠진 헐거운 빗자루 같아요. 단단하게 이어져 있어야 할 문장들이 제멋대로 풀어져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아쉽죠. 문장들이 꼭 물에 푼 매생이처럼 매가리 없이 흐물흐물하잖아요. 기운도 개성도 없고.
왜 이런 얘기들만 기억이 날까.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주인공의 외로운 심정은 알겠어요. 그런데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문장을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것 같지 않아요. 단편소설은 단 하나도 허투루 쓰이는 문장이 없어야 하잖아요. 압축해서 보여줘야 할 부분에서도 인물들이 전부 자기를 드러내며 팽창하고 있어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조금 생각이 다른데요.
세훈이었다.
-태경 선배의 글을 읽고 언어에도 촉감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물론 독자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주제나 의미만 좇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언어가 가진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태경 선배만큼 표현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그야말로 언어로 하는 이야기잖아요.
내 글이 선명하지 않고, 막연한 그늘 속에 가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말은 내게 떨림을 주었고 어둠 속에 웅크려있던 나를 일어서게 했다. 어쩌면 말이 아니라 ‘사람’에게 위로받았는지도 모르지만.
반면 그의 문장은 (매가리 없이 풀어진 매생이와 달리 쫄깃한 미역 같았다고 하면 너무 즉물적일까) 내가 갖지 못한 것,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었고 단단한 벽돌 같았다.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쌓인 그것은 종국엔 제법 굉장한 무엇이 됐다.
-상 받고 나서 우리 모른 척하면 안 돼요!
-세훈 씨는 2관왕 3관왕 하고도 남죠!
세훈이 자주 듣던 말.

-스웨덴으로 교환 학생 갔었잖아. 스페인이었나?
-스웨덴 맞아요.
-언제 돌아온 거야? 계속 한국에 있었던 거야?
-스웨덴에서 공부 마치고 한국 와서 석사 논문을 썼는데 잘 안 됐어요. 다음 학기에 다시 도전하는데 불현듯 학문이나 지식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교수님은 어렵지, 동기들은 다 졸업하고 후배들이랑 어울리기도 뻘쭘해서 마음 털어놓을 데도 없었거든요. 몇 년 유럽에서 살았다고 수직적이고 지시적인 계급 문화도 불편했고요. 도망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부모님이 학위는 있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서.
-다니던 학교는 졸업했고?
-네.
-잘했네.
-논문 통과되고 바로 호주로 날아갔어요. 워킹홀리데이 하면서 모은 돈으로 인도랑 네팔에 오래 있었고, 미국에서도 잠깐 지내고요.
-장기 여행자처럼 돌아다닌 거야?
-흐느적거리는 방랑자였죠 뭐. 부랑자까진 아니었다고 믿고 싶고요. 친구들과 부모님은 외국에서 자리 잡고 공부하길 바랐는데 전공도 적성에 안 맞았고 끝까지 해낼 자신도 없었어요.
-전공이 경영학이었나?
-영문학 복수전공 했었죠.
그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다녔다. 그런 애가 왜……
-참. 늦었지만 선배, 소설가 된 거 축하해요.
세훈이 두 손바닥을 맞대며 짝짝짝 박수를 쳤다.
-말로만?
쑥스러워서 그렇게 대꾸했다.
-그런데 선배, 문학이요.
달라진 분위기. 무너진 산에서 우르르 묵직한 돌덩이가 굴러 내려오는 걸 목격한 것처럼.
-응.
-어떤 나라에 가든, 거기서 뭘 하든 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한동안 정말 열심히 썼어요. 선배랑 같이 모임 했을 때의 글쓰기는 워밍업이었다고 여길 만큼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매달렸어요. 초고속 열차에 몸이 딱 붙은 사람처럼 내달렸죠. 여러 곳에 주기적으로 투고했는데 잘 안 됐어요. 모르겠어요. 좋은데 고통스럽고, 억울하면서도 아쉬워요. 요즘은 일시 정지 상태예요. 내 글이 그렇게 별로인가, 내 소설이 그렇게 매력이 없나, 생각이 많아요.
생각이 많은 사람, 세훈의 세상은 어떤가. 그도 세상을 미워하고, 그만큼 미움받을까. 미움…… 받았을까?
‘내 글이 그렇게 별로인가, 내 소설이 그렇게 매력이 없나.’ 너처럼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말할 수 없어서 침묵했다. 화제를 바꿔도 될지.
-기타는 어디서 배운 거야?
-호주에 있을 때 유튜브 보면서 혼자 연습했어요.
-멋지네.
-기타는 쌓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아요. 소리를 날려 보낼 뿐이잖아요. 소리가 자기 몸에 새겨지는 것 같다는 둥 손가락 끝의 단단한 살에 음악을 저장한다는 둥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요, 다른 건 모르겠고 기타가 없었으면 아마 미쳐버렸을 거예요. 연주하는 동안에는 소설을 잊을 수 있었어요. 탈락, 탈락, 탈락. 내가 썼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한 그 글을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데, 포기하고 싶은데, 내던질 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는 거예요. 버스 창밖으로 날려버릴까, 기차 레일 위에 깔아버릴까, 조각조각 찢어 강이나 바다에 띄워 보낼까…… 차마 그러지 못했어요. 내 소설이 담긴 유에스비를 잃어버리기는커녕 복사본을 클라우드에 저장해놓기까지 했죠.
그래, 가만 들어줄 수밖에.

강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바람을 피해 골목으로 이동했다. 문 닫힌 상점들을 지나자 고딕 양식의 쌍둥이 탑이 중세의 용맹한 기사처럼 서 있었다. 틴 성모 교회였다. 광장을 가로지르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됐다는 천문 시계탑이 나올 거였다.
-정말 밀란 쿤데라 때문에 프라하에 온 거예요?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진심이야” 덧붙였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특강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의 부고를 접했다. 전자책을 읽으려고 앱을 열었는데 폰트 사이즈를 최대로 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늦장마를 보낸 뒤로 부쩍 독서가 압박과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잦았다.
다른 책을 검색할까 하다가 관두고 sns에 접속했더니 연이어 이런 뉴스가 떴다. “밀란 쿤데라 타계(1929.4.1.~2023.7.12.) 체코계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에서 사망했다고 체코와 프랑스 매체들이 12일 전했다. 향년 94세.”
거장의 죽음에 대한 짧은 탄식과 함께 텔레비전에서 본 도시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카프카의 고향이자 밀란 쿤데라와 카렐 차페크의 도시이기도 한 프라하. 언젠가 유럽에 간다면 일 순위로 방문하고 싶었던 곳.
타임라인의 독서가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너도나도 그가 남긴 소설의 문장을 손끝으로 적어 올렸다.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결국 삶이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삶이란 이보다 더 주관적일 수는 없다. 그러니 부디 주체가 되는 삶, 내 눈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길.”

독자들이 킬킬거리며 읽을 만한 내용을 구상해 봐. 심각하고 따분한 스토리는 개나 줘 버려. 그런 게 통했던 시대는 지났다고.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며 훅 읽으면 그만인 이야기, 롤러코스터 타듯 즐겁게 소비되는 이야기, 기내용 잡지에 실릴 만한 가벼운 콩트는 어때? 첫눈에 반한 사랑도 좋고, 잊지 못할 첫사랑도 괜찮지.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헤어진 연인에 대한 원망도 나쁘지 않고. 방귀나 트림, 잠꼬대나 주사를 소재로 풀어낸 인간 관계도 재미있지 않을까?
(나를 향한) 보이지 않는 대중의 조언과 충고.

-선배, 밀란 쿤데라 좋아했잖아요.
-너도 그랬잖아.
세훈이 웃으며 이마를 끄덕였다.
-돌아가셨다는 기사 봤어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더라고요.
나도 그랬어. 공감의 눈빛.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쿤데라, 하면 그거 잖아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 책을 끼고 살았잖아. 아무 데나 펼쳐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서너 문장씩 읽어주고.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만큼이나 충격적인 제목이었죠. 나의 이십 대를 온통 뒤흔들었던 경구이기도 하고요.
-네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나온 영화인데?
-선배도 아직 세상에 없었고요.
세훈이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찌찌뽕,을 하는 것처럼 팔을 들어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굳은살이 만져졌다. 접촉의 순간을 처음 맞이한 사막의 여우처럼 우리는 잠시 지문을 맞대고 멈춰 있었다.
세훈은 소설을 잊기 위해 기타를 연주한 걸까, 소설을 잊지 못해서 줄을 튕겼던 걸까. 혼자 기타를 사고, 혼자 코드를 익히고, 혼자 스트로크를 연습한 세훈. 혼자 소설의 내용을 구상하고, 제목을 정하고, 주인공의 이름을 짓고, 문장을 벼르고 또 별렀던 나, 그리고 우리.
한때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있었다. 학부생, 대학원생, 지망생, 수강생의 이름으로 함께 소설을 이야기했던 나날. 어쩌면 배움은 영원히 누군가와 같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움을 그만두면 안 되니까. 소설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 배움을 멈춘 것이 지금 나의 죄목이자 부끄러움의 근원은 아닌지.
세훈의 단단한 손가락과 달리 내 손가락은 너무 무르고 물렀다.
-다시 해보려고요.
-응…….
그러자. 그래야지.
하이파이브를 한 뒤 손을 놓지 않은, 다섯 손가락으로 전해진 온기는 작은 기적이었다.


*이탤릭체로 인용한 문장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져왔습니다.

 

*<봄> 바로크 극장: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여름호> 한여름 낮의 꿈:빈에서

*<겨울호>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바라나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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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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