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싫다는 새파란 거짓말-10
후기
꼭 터키와 그리스여야 할 이유는 없없지만 터키, 그리스여서 더 좋았던 여행. 길잡이 셀린 님과 룸메 도련 님이 있어서 더욱 감사했던 시간이었어요.
종이책은 달랑 한 권 가져갔는데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패터 한트케, 문학동네)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밤이 기다려졌지만 지금은 낮이 더 기다려졌다.”(129쪽)
겨울밤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죠. 다짐과 후회, 질투와 반성 때문에 피곤했어요. 머리가 아니라 다리를 움직이고 싶었습니다. 달라지고 싶었어요. 변화는 버리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더불어 떠나고 싶어서, 하지만 인솔자를 얌전히 따라다니고 싶지는 않아서 ‘인도로가는길’ 세미팩을 신청했습니다. 제 선택에 만족합니다. 밤마다 환한 낮을 추억하고, 찬란할 다음날을 기대하며 잠들었으니까요.
1월 28일에 출발한 <터키+그리스20일> 상품은 저와 길잡이 포함 일행이 6명이었는데 모두 건강하고 명랑한 여행자들이었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터키어까지 유창했던 길잡이 셀린 님 덕분에 책에 나오는 일반적인 정보 외에 현장에서 조우한 삶의 순간까지 간접 경험할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언어 덕분인지 그 나라의 문화와 분위기를 깊이 알고 있어서 나란히 걷기만 했는데도 듣는 즐거움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사람들한테는 누구나 다 갑자기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는 행동들이 있게 마련이지요.”(199쪽)
제 경우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소외시킨 뒤 ‘이게 편해’하면서 자만하고, 인간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날마다 혼술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인데요, 배려 넘치는 룸메 덕에 눈치 보지 않고 내 성정과 취향을 지킬 수 있었어요.
길잡이, 룸메와 함께 좁은 숙소에서 라면 국물을 들이켰던 값싼(?) 추억 또한 매우 귀하게 기억됩니다.
열흘 간의 터키 일정 뒤 그리스에서는 ‘인도로가는길’ 직원분(지미)과 어머님이 합류하셨어요. 가면 쓴 가짜만 아니라면 ‘뉴 페이스‘와의 만남은 언제나 신이 나죠. 초콜릿 몇 개, 웰컴 드링크(맥주, 와인) 나눔, 적극적인 사진 촬영 등 조건 없는 선물이 쏟아졌어요. 고맙습니다.
터키에서 바로 그리스 넘어갔을 때는 터키가 낫다, 터키가 좋아, 그랬는데 터키는 터키고 그리스는 그리스. 물감 테러와 소매치기 목격, “뒤로 물러 나. 코로나 온다.”, “이제 우리 죽는 거야?” 부정직하고 겁많은 인간 군상이 있었음에도 그리스 방문은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돌고 도는 거니까요.
고대 도시 델포이에서 본 계란 모양 돌(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날려 세상의 중심을 찾아가게 했더니 이 장소에 도착했고, 그곳에 돌을 박았다. 진짜 돌은 박물관에 있음), ‘그 한때의 중심에 입맞췄던’ 상징과의 스킨십은 영영 잊지 못할 거예요.
터키에서 만난 눈, 비, 바람도 겨울여행의 묘미를 살려주었습니다. 우리의 걸음걸음을 따라 흐르던 구름은 존재 그대로 멋진 사진 친구였죠. 겨울에 가도 괜찮을까?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만인의 풍경’이 아닌 ‘나만의 장면’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터키와 그리스는 역사문화유산의 보고! 유적과 박물관이 대개 비슷하고 BC4세기나 6세기나 그저그런 과거 같지만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비교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박물관의 발견이랄까, 이번 여행에서 전시실의 구조, 전시방법, 전시장의 색감, 유물 관찰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몰아보기’ 덕이었죠.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보지 뭐, 하는 심드렁보다는 뭐가 달라도 다를 거야, 하는 시골소녀 눈망울이 도움이 됐습니다.(현실은 도시 중년여성이지만)
터키 음식은 별미였어요. 항아리케밥, 고등어케밥, 소고기케밥, 양갈비, 화덕에서 방금 구워낸 빵, 찐 감자에 온갖 야채와 소스를 넣은 쿰푸르, 닭가슴살을 얇게 찢어 넣은 디저트 타욱괴의쉬, 실타래를 입에 넣으면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피스마니에, 눈 앞에서 바로 짠 100% 석류주스... 남들 먹는 건 다 먹어봤지요. 그리스 음식은 터키랑 비슷한 것 같아요. 문어 구이와 수블라키가 유명하다고 하고 먹어보기도 했지만 가격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음식은 그리스보다 터키가 나은 듯합니다.
이스탄불 in, 아테네 out이어서 선물은 주로 그리스에서 샀는데 팀원들은 올리브유와 꿀을 가장 많이 샀고 저는 그리스 전통술 우조, 술잔, 각종 마그네틱, 듣도보도 못한 이름의 꽃차와 잎차, 초콜릿을 잔뜩 사왔네요.😁
모두모두 감사했습니다:)
악수하고, 포옹하고, 미소짓고, 손 흔들었던 따듯한 작별인사에 신화와 역사, 신의 사랑이 닿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