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시인’은 알 수 없는 주머니를 품고 다닌다:시인 정우신
201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 등을 펴냈다. 2023년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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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생각나는 시, 그리고 나]
어떻게 지내시나요, 나름 상냥한 안부 인사.
“뭐, 먹고 사느라고요. 강의하고, 다음 시집 기획하고…….”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예고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모 출판사 편집위원으로 일한다. 무엇보다 시를 쓴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최근에는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최근의 ‘나’를 객관화하여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시란 무엇인가’, ‘시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끝나지 않는 질문에서 ‘시인’을 둘러싼 삶의 국면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는 듯해요. ‘시-시인’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물체들, 이를테면 생활, 활자, 고통, 사랑, 운명, 백지, 에너지, 법칙 등등.
아무리 시를 써도 읽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소위 인기 있는 시인이나 많이 팔리는 작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들은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읽히지 않는 글자를 까맣게 칠해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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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백지에 네모를 그리고 안을 검게 채운다.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식민지 시대의 시인들을 회상해 그들과 콜라보하는 느낌으로 작업해 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검열 시대에도 글은 인쇄됐지만 이면에는 또 다른 게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또 얼마 전 『삼체』라는 소설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세 개의 물질 중 하나를 언어라고 하면 그것도 ‘검은 상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는 시인과 언어, 시인과 세상이 만났을 때 아직 열리지 않은 상자 같은 거예요.”
어느 날 삶과 언어가 결합해 이 세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 혹은 발견되지 않은 물체가 생성된다. ‘시-시인’은 알 수 없는 검은 주머니(■)를 품고 다닌다.
“물체의 속성이 어떤 성분과 화학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당장은 밝혀내기 힘들 거예요. 어쩌면 ‘신’이나 ‘사랑’처럼 영원히 환원되지 않는 그 무엇일 수도 있고요. 그 물체가 어떠한 힘으로 만들어지는지, 검은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세상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해요. 문명적 시간에서 시는 거시적이고 시인은 미시적이에요. ‘시-시인’은 동시에 존재했다가 사라지고요. 지금 우리의 소시민적 삶에 시와 시인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제가 ‘시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연관되지 않은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선택이고 나의 인식론이었던 시가 존재론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시인의 입술이 움직인다. 콧등에 잡힌 짧은 주름과 드러났다 감춰지는 칸칸의 치아.
시인은 말을 한다. 난해한 말을 한다. 그의 언어 속에 존재가 있고 연결이 있다. 거시와 미시, 인식론과 존재론이 있다. 청자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화자는 진지하다. 곤혹스럽지만 싫지 않다. 그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말을 붙잡는다.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다. 손을 뻗자. 붙들어 건져 올리자.
하여, 당신이 천착하고 있는 사유로 탄생한 시가 있느냐고 묻는다.
■■■ 아무도 읽지 않는데
자유가 필요한가요
스스로 검열하는 자를 위하여
까마귀가 웁니다
나의 그림자는 작은 돌에 끼어서 풀과 애벌레와 여름을 숨겨놓고 햇빛 아래 서성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요 교육과 사랑 것이
무모하게 시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와 까마귀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시인은 오래전 떠나갔고 하천에 나를 비춰보니 가장(家長)의 모습이 부끄러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물에 발을 담그고 눈을 감으면
누군가의 마음이 이끼처럼 발등으로 번집니다
까마귀가 웁니다
■■■
소중한 손님이 나의 머릿속에 찾아와 달과 태양을 바꿔가며 바둑을 두다가 갑니다
당신의 어깨는 무거워지는데
동면에 들어갔는데
나는 불에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 물에 젖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하다가……
당신의 거리에서 흐르던 음악이 물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은 귀를 허공에 띄워놓고 바람을 기다립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너무 크고 무거워 시인은 가장 가벼운 펜과 노트를 삽니다
―「시인과 세 개의 물체」부분 (시산맥, 2025 여름호)
작업의 영감은 어디서 얻을까.(그나저나 요즘도 영감靈感 같은 단어를 쓸까? 흠, 영감令監 같군.)
“생각과 영감은 불규척적으로, 그것을 활자화시키는 것은 규칙적으로 하려고 노력해요. 때로는 반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고요. 청탁이 들어오면 더 열심히…….”(웃음)
올해 초부터 문창과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작품을 가져오라고 한 뒤 한 명씩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스르륵 서서럭’에 웃음이 터져 한동안 수업을 이어 나가지 못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 부분, 그 시만 봐도 웃기고, 시가 아니라 발표자가 또 다른 대상이 되고, 두고두고 얘기할 정도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긴 거죠.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영감이 되는 듯하지만 늘 그렇듯 모두 사라져요. 시가 되는 것은 생각하기도 전에 흩어지고 시가 되지 않는 것만 빈 교실에 남아있죠.”
[아무튼 시, 그래서 나]
시인이 시인이기 전, 그는 왜 시를 선택했을까.
“어려운 질문이 생길 때 단어를 바꿔보는 버릇이 있어요. ‘시’와 관련된 질문은 답이 되는 순간 오답이 되어버리는 마법의 가루 같아요. ‘시’를 ‘삶’으로 바꿔서 생각해 봐요. 왜 ‘삶’일까? 어떻게 ‘삶’일까…… 다시 바꿔봐요. 왜 ‘나’일까? 어떻게 ‘나’일까?
가만가만 떠올려보니 ‘왜’와 ‘어떻게’가 신비한 것 같아요. 질문과 이유의 ‘왜’와 과정과 행위의 ‘어떻게’를 의심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들이 답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마음을 움직이며 동시에 육체를 움직이는 것, 그것이 ‘시’ 같아요. ‘시’ 같은 것이 ‘삶’을 축조하고 ‘삶’ 같은 것이 ‘시’라는 흔적을 남기죠. 그곳에는 이성과 합리와 가치와 교환이 없어요.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는 자는 부처의 눈 속에서도 호수를 보잖아요. 시는 그것이 흐르지 않도록 용광로의 구조에 담아내고요.
‘어떻게’ 제가 여기까지 왔을까요. ‘왜’가 끌고 왔을까요? ‘시’가 당겼을까요? 여전히 남은 것은 ‘나’ 혼자라는 사실이에요.”
어쩔 수 없다. 시인의 생각을 그의 것으로 옮겨적을 수밖에.
내 것으로 소화하긴 글렀다는 것을 그의 몸짓과 말투를 보며 깨닫는다.
오롯이 시인의 문장이다.
인천과 관련된 질문을 하나쯤은 해야지.
인천의 특정 장소와 관련된 시가 있나요? 시인에게 인천이란? 아, 왜 이리 뻣뻣하고 진부한가.
나는 가볍고, 명랑해지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인천을 좋아하세요?
“어렸을 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문학을 하며 살다 보니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은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생각하는 장소도 많은데 그중 하나는 아무래도 한국근대문학관 근처죠. 개항로, 참외전로 주변.
인천은 열지 않은 보물 상자예요. 인천만큼 근대와 현대, 미래의 가치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도시는 많지 않아요. 지형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갯벌에 수없이 난 숨구멍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도시라고 생각해요.”
시집에도 ‘인천’이 담겨 있을까.
“첫 시집 비금속 소년의 배경은 공단과 공구상가, 두 번째 시집 홍콩 정원의 SF적 상상력은 인천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공존으로부터 흘러나온 듯해요. 아버지가 공구상가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저도 그 골목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감각 같은 게 있을 거예요. 인천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제 작품 곳곳에서 인천의 냄새가 풍길 테죠.”
꽃을 보면 식도가 타오른다. 소년은 철을 갈고 찬밥 먹고 어머니께 돈 부치고 기차역, 포구, 공장, 물보라, 연꽃, 백악관, 봄봄 전전하거나 탕진하였다. 절단기가 도는 동안 고기는 식어 가는 것일까 부활하는 것일까. 비린내가 풍기는 곳엔 돈이 돌고 돈이 오가는 곳엔 새끼가 있다. 피는 흘러 흘러 다음 육체를 찾아갈 것이다. 피는 피를 만나 꽃을 피울 것이다. 번식을 할 것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나는 안쪽부터 썩는 잎맥이다. 푸른 구멍을 가진 뼈다귀다. 나는 전생을 걸어 겨우 해가 지는 방향을 아는 돌멩이다. 나는 거울 속에 걸린 소년을 바라본다. 갓 지은 흰 쌀밥에 뭇국을 딱 한 그릇만 먹고 갔으면 한다. 졸린다. 자꾸만 졸린다. 살아야지. 이렇게 살려고 꽃을 꺾은 건 아닌데. 입안으로 가득 찬 흙이 무겁다. 천장에 걸어 둔 갈빗대로 햇살이 예리하게 놓인다. 나는 나의 절반을 툭 잘라 당신에게 준다.
-「식육점에서」(미분과 달리기, 파란, 2024)
[언제나 좋은 것]
시 너머의 생활, 시인이 아닌 사람에 다가가기.
생각하면 언제나 좋은 장소, 사람, 어떤 것이 있나요?
“하루를 끝내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루 분량의 운동을 끝냈을 때, 작품 한 편을 완성했을 때 등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요. 대부분 무언가를 완료했을 때 좋은 기분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단어 앞에 다른 걸 붙이는 걸 좋아하고, 바꾸는 것도 좋아하는데 여기서의 완료는 ‘(미)완료’에 가까워요. 정지나 닫힘이 아닌 열림과 지속이죠. 끝이 아닌 이어지는 삶. 반복되는 생활에서 뭔가를 해냈을 때 그래도 오늘 하루 잘 살았다는 느낌 같은 것 있잖아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같은 것.
송도에서 열린 건즈앤로지스 공연에서 슬래시의 기타를 들었을 때, 비 오는 날 LP 바에서 오랫동안 블루스를 들었을 때 시인은 특히 행복했단다. 전문성은 없지만 그는 음악에 제법 호감정이 있다. 보편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균열이나 틈을 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거나 어긋나게 하거나 미끄러뜨리게 만드니까.
어떤 시인/예술가/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부사와 형용사로 수식되는 사람보다 좋은 작품, 좋은 시집을 지닌 시인으로 남고 싶어요. 시를 짓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즐거웠던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그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지만요. 꿈속에서 가끔 미래의 ‘나’가 찾아와 아등바등 허둥지둥 살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오늘도 저는 제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고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