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강좌의 두 번째 합평 시간이었다.
지난주에는 'Wave'란 제목의 50매 소설을, 어제는 80매 분량 단편 하나, 30매 분량 에세이 하나를 함께 읽고 토론했다. 에세이는 소설로 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인 플롯은 구상하지 못한 정리 차원의 글이었다.
김OO 씨는 지난해 봄에 배다리에서 만났고, 꾸준히 내 소설강좌에 참여했다. 지난해 짧은소설 프로젝트에 응모한 작품까지 대략 7편 정도 그녀의 작품을 본 것 같다. 한 해 반만에 그 정도를 봤으니 그 분이 얼마나 성실한지 알 수 있다.(수업도 거의 결석을 안 한다) 다른 곳에서 소설모임도 하는 것 같던데 매번 새로 쓴 소설을 보여준다니 열의가 대단하다. 뭐가 돼도 될 것 같은데 얼굴 보고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어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네 가족 이야기를 써왔다. 신선한 시도라고 여겨졌다. 현대 한국 단편에서 전지적 시점은 드문데다 가족에게 골고루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이 압도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집 안을 배경으로 하다가 나중에 집밖으로 나와 동해로 가는 흐름도 좋았다. 이건 선생의 처지에서 본 것.
독자로서의 감상에는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네 가족 이야기가 낯설었고, 몰입도는 높았지만 매력은 좀 적었다. 그 안에 담긴 세계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혼하면 1억 줄게"라는 부모의 제안과 거래가 식상했던 것. 글쎄, 내가 소설에서 보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그게 그대로 돈과 연결되고, 벌어도 벌어도 부족한 어느 평범한(?) 집안 이야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결혼하면 1억 준다는 말에 옳거니 하면서 상대를 구해오는 한 취준생의 모험담(?)이었다면 기대감이 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단다.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할 때는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조사할 것도 많았는데 상대적으로 이 작품은 편하게 썼다고 한다. 그런데 '내 이야기' 하기가 좀 꺼려져서 우물쭈물하다보니, 그리고 몇 번씩 쓰고 고치다보니 앞뒤가 안 맞는 것도 있고 사실관계가 틀린 것도 튀어나온 것 같다고. 격려로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많이 지지해줬다. 헤밍웨이는 "빌어먹을 심장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200번 넘게 고쳤다고 하니 퇴고하면 좋아질 것이다. 고친 작품을 보고 싶다.
장OO 님은 2년만에 소설 수업에 다시 참가하고 계시는데, 오랜만에 보는 글이 반갑기도 했지만 솔직한 요즘 생각을 적어, 글 안에 아들을 알고싶어하는 아빠의 마음도 있어 더 기쁘고 고마웠다. 휴가 나온 아들을 바래다주면서 낯선 역에 도착해서 보고 느낀 어느 하루의 일을 그렸다. 역의 풍경, 짧은 산책에서 마주친 사람들, 우연히 들린 카페 여주인과의 에피소드... 그 와중에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서정적인 분위기로 잘 표현돼 있었다.
언제나 문장이 제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그건 마음보다 서사가 강조돼 있는 글을 접했을 경우다. 문장부터 짚고 말문을 열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어제는 후자였다. 마음이 움직였고,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2015년부터 그의 글을 봐왔고, 집안 사정을 좀 아는지라 글 바깥에 있는 생활도 묻고 들을 수 있었다. 더 쓰셔야 합니다, 계속 쓰셔야 해요, 그를 위한 조언이었다. 회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필연적으로 써야만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 나는 조금씩 그런 사람들을 알아챌 수 있다.
참여자는 나까지 다섯 명이었는데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충분히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발화자가 많으면 내 말 할 시간이 부족해 서두르게 되는데 어제는 그렇지 않았다. 침묵하고 음미할 시간이 있었고, 그게 3초라도, 5초라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 수업 후 "오늘 합평 재미있었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그의 말이 내 말인 것 같아서 이심전심, 역시 통하는 구나... 뜻깊었다.
배다리 수업, 매번 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다음엔 못 하는 거 아닐까? 두려움에 떠는데(?) 이대로, 이따금 지루하더라도, 내내 이 자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바쁘면 한두 번씩 빠지더라도, 그래도 생각나는 곳이 여기라, 내가 거기 있어서, <Thursday story workshop>이 좋아서(갑자기 이름 만들어냄 ㅋㅋ) 그렇게 오고 또 오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그들과 더불어 오래오래 소설을 읽고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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