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영욱 사진집 '접촉'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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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부치다

 

오지 않은 편지에 답장을 쓴다. 답장이므로 첫 인사가 아니다. 나는 상대를 잘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고, 말을 걸고 싶은 마음에 머뭇거림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글은 그 편지의 시작이자 전부다. 이영욱 사진집 [접촉]에 대한 답장이다. 사진가가 사진전을 준비할 때 그런 느낌일까. 얼굴 모르는 수신자에게 말을 거는 기분일까. ‘내 사진 어때요? 내 사진 멋지죠?’가 아니라 나는 요즘 이런 이미지를 보고 있어요.’, ‘설명할 수 없는 질문들을 품고 있죠.’ 속삭이는 감정일까. 어떤 신호를 감지하고 같은 코드로 대화할 수 있다면 소통은 수월하다. 그러나 A 세계에서 온 외계인과 A 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해서 같은 코드를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취미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장점이 다르므로. ‘내 작업은 이런 겁니다하고 사진가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때때로 수신자(관람객, 독자, 감상자)는 무심하다. 붉은 빛만 받아들이거나 노란 빛은 무시한다. 삐삐삐삐- 번번이 접속은 무산되고, 접촉은 어렵다.

그런 어려움을 이영욱은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얼핏 보아 평범하고 잘못 찍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나만의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와 감각적인 시각으로 차별화를 두고 싶었다. 그런데 늘 고민이었던 것은 이들 사진이 분명한 의미로 전달이 잘 안 된다는 것이었고 나의 의도 또 한 명쾌하지 못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달려든 건 아니지만 걸리는 말이 있다. ‘나의 의도 또한 명쾌하지 못했다사정이 이렇다면,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수신자는 당황스럽다. 발신자여, 이해하기 쉬운 걸 내놓으시오.

어떤 신호를 감지하고 같은 코드로 대화할 수 있다면 과연소통은 수월할까? B 세계에서 온 외계인과 B 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해서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잠정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한이영욱의 작업은 이렇게 수정된다. “사진 이미지의 모호함은 오히려 추측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것임을 알았다.” 수신자에게 바통 넘기기. 수신자는 추측과 상상으로 이미지의 매혹과 만나야 한다. ‘잘 모르겠다고 백 번 천 번 말해도 된다. 이유를 덧붙이지 않고 그냥 좋았어라고 읊조려도 된다. ‘뭐가 있는 것 같은데마냥 빠져들어도 된다. ‘소유하고 싶다고 주장해도 된다. 이제 수신자는 자유롭다. 소통은 접속으로 전환되고, 마음을 붙였다 뗐다, 얼마든지 접촉놀이를 즐길 수 있다.

 

, 나는 이런 사진에 마음을 붙였다.

코끼리가 있다(33). 광야는 아니다. 평균 수명 60~70년인 코끼리가 좁은 동물원에서 살면 17년도 못 견딘다는데 어쩌면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코끼리는 시멘트에 둘러싸여 있고, 혼자다. 프레임 바깥에 가족이 있을지도 몰라, 코끼리는 걱정하지 마, 쿨하게 눈 돌릴 수 없다. 삐져나온 코 때문이다. 코가 길어서 그랬나 보지, 물을 마시고 싶었던 것 아닐까, 다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인생은 더럽게 재미없어지기 마련.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 코, 몸보다 앞에 있는 코, 외로운 코, 숨 쉬는 코, 동전도 집을 정도로 예민한 코가 마음에 걸린다. 코끼리는 매우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은 동물이라고 한다. 35년 전에 헤어졌다 다시 만난 인간을 알아보기도 했다고. ‘코끝을 밖으로 살짝 내민 코끼리가 없었다면내가 코끼리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발을 굴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동료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는 코끼리. 코끼리는 그런 동물이다.



개구리 혹은 두꺼비(97). 무릇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찢어져라 입을 벌리고, 튀어나올 듯한 눈에, 네 다리를 좌악 펼치고 있는 개구리는 감이 없다. 그 상태로 정지, 또는 죽었다. 보일 듯 말듯한 눈알을 찾다가 발가락을 세어본다. 앞다리는 각각 4개씩, 뒷다리는 각각 5개씩. 도합 18. 그랬구나. 새삼 숫자에 감탄한다. 자세히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앞다리는 팔처럼 짧고, 뒷다리는 접힌 우산처럼 길다. 이 동물은 도대체 뭐지? 묘한 긴장감. 살았니, 죽었니? 살았다! , 숨넘어갈 뻔했잖아! 거참, 죽을 일도 많다.

죽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도 될까. 비둘기와 연탄재, 담배꽁초에 대한 이야기를(23). 한때 온기 있었으나 이제는 식은 숨으로 남아있는 사물들. 어쩌면 쓰레기들. 이 길을 지나친 사람들. 걸음을 멈추고 잠깐 머물러 내 것으로 만든 생각들. 볼수록 쓸쓸한 사진이었다. 누렇게 변한 연탄과 하얀 담배꽁초가 제법 무겁게 놓여있다. 틀림없이 겨울이었을 테니, 비둘기는 꽁꽁 얼었을 것이다. 약간의 빛을 놓칠 수 없지. 저 멀리, 오른쪽에서 비쳐오는 밝음을. 지친 노을 같은 이미지여서 해질 무렵 개와 늑대의 시간에 마시는 술 한 잔이 간절했다.

밥이다(31). 땀 흘리는 밥.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도서관에 방문도장을 찍었던 적이 있다. 여름이었고, 구립도서관은 언덕 위에 있어서 아침마다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자판기 커피는 200, 지하식당의 밥은 2500, 아마 그랬을 것이다. 십 년 전쯤의 일이다. 혼자 살 때라 세 가지 반찬과 국이 나오는 점심을 꼬박꼬박 사먹었다. 가격도 쌌고, 맛있었다. 주변에 공사가 있고, 인부들이 도서관에서 밥을 먹기로 돼 있었는지 언제부턴가 작업복을 입은 사람 몇몇이 식당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밥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밥이, 사진 속의 그 밥이었다. 식판에 고봉으로 수북이 쌓인 밥. 집에서 도서관까지 걷는 걸 제외하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였던 나는 그들만큼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도 맘처럼 글이 써지지 않아 이따금 무기력감에 빠지곤 했다. 훗날 인천의 한 묘지에서 푸르고 둥근 봉분을 보고 나는 그때의 밥을 떠올렸다. 살게 하는 밥, 살려고 하는 밥, 살 수 있게 하는 밥. 지금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묘지 위를 뛰어다니는 청년이 나오는 홍콩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 인상이 강해선지 묘지가 전혀 무섭지 않다. 청년은 밥 위를 뛰어다닌 것이다. 살려고. 날려고.

 

그의 사진에 제목을 단다. ‘콧수염’, ‘’, ‘안개의 겹’, ‘가깝게 헤어지지 말자등등. 나는 이런 식으로 이영욱의 사진과 얼마든지 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영욱이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내 상상과 추측을 그에게 말하지 않는 한 그는 내 존재를 알 수 없지만 그는 분명 자신의 사진과 노는 어떤 이를 궁금해 할 것이다. 과장하거나 조각내고 제멋대로 더하고 빼도 서운해 하지 않고, ‘잘 하셨어요하고 웃을 것이다. 우리의 놀이가 사진에 억지로 말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일의 일부임을 이해할 것이다.

사진전을 방문한 구경꾼이 꼭 화살표를 따라 갤러리를 돌 필요는 없다. [접촉]을 첫 장부터 후루룩 넘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사진집을 꽤 여러 번 들었다 놨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사진을 발견했다. 50여점의 사진이 홀수 페이지에만 실려 있는 책이란 건 맨 처음 손에 들 때 알았는데 어떤 날은 데칼코마니처럼 왼쪽에 같은 이미지가 겹쳐있었다. - 불어 환영을 날려 보냈다. 그랬더니 점점 커져 내 방 벽에 가서 달라붙기에 크기를 뽐내는 게 언제나 멋있는 건 아냐말해주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하려고 한 장 한 장 꼼꼼히 넘긴 날은 비 내리는 밤이었다. 나는 그때 스탠드 불빛 아래 누워 있었는데,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차고 따듯한 바람이 콧등을 빨갛게 물들였다. 내겐 가난한 사진처럼 보였는데, 지금보다 마음이 허했을 때는 넉넉한 모든 것에 불만을 품었다. 가난한 나를 더없이 염려했다. 그래서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겠지만.

[접촉]과의 만남은 침묵하는 대상을 흔들어 말을 거는 일이었다. 그에게 다가가는 일이었다. 안부와 추억을 적은 편지 말미에 서명을 하고, 혀를 내밀어 봉투에 정성스레 침을 바른다. 빨간색 구두를 신고 우체국에 간다. 그에게 무사히 닿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커다란 우편배달부의 가방은 보고 싶다는 말로 가득하다. 그러니 부디, 만나기로 하자.

 

* [작가들]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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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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