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는 일을 넘어 다른 세계를 상상“

1인문화예술공간(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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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서울에서 공연 중일 때 소식을 접하곤 뒤늦게 정보를 확인했는데 서울은 전부 매진. 세종 대전 대구는 너무 멀고.
동탄 정도는 갈 수 있겠다, 티켓 오픈일을 체크하고 알람을 맞춘 뒤 기다렸다.
평일 오후 2시였고 친구랑 4.10 선거일에 가기로 하고 도전했으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4.10일이 아닌 4.9일에 들어감. 앞에서 두 번째줄 가운데 자리 성공하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4.9일 ㅋㅋ
동시에 예매 도전한 친구는 나처럼 2시 정각에 들어갔으나 4.10일 공연은 가장자리밖에 없었다고. 그거라도 했다가 취소.
친구가 4.9일엔 못 간다 하고, 나는 4.9일 기가 막힌 자리를 조기예매 할인받고 겟했고. 그럼 엄마를 모시고 가자!


“박근형, 신구, 박정자 알지? 그 사람들 나오는 연극이야.”
이름으로 운을 뗀 뒤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쓰윽 건네고는 “이거 볼 거야” 했다.
공연장에서 엄마는 “책 읽을 땐 잘 이해 안 됐는데 연극 보니까 좀 알겠네. 집에 가서 책 다시 봐야겠다” 하신다. 인터미션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온 엄마. “부부가 같이 왔나 봐. 연극 재미있으세요? 물어서 전 재미있어요, 했더니 너무 난해하대. 난 연극 처음이라 볼 만하다고 말했어.”
엄마가 연극 처음이라고? 아닐 텐데… “여느 연극하고는 많이 다르지.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으니 추상적으로 느껴지셨나 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또 “강부자 나오는 연극, 친정 엄마? 그런 것도 봤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아.” 하신다. 지난에 나훈아 콘서트 다녀오시고 지난달 윤복희에 이어 ‘연세 많은 어르신들’ 공연을 연이어 본 엄마는 즐겁지만 조금 우울하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멋있는데 난 뭐하고 살았나 싶어서.
이번 연극을 보면서는 특히 박근형에게 놀라신 듯. 어쩜 85세 나이에도 저렇게 짱짱할 수 있느냐며. 저 많은 대사를 다 외우고 한쪽 다리로 지탱하고 두 팔 들어올리고.(난 못해.)


1부 70분, 20분 쉬고, 2부는 60분이었는데 1부는 좀 지루했다. 배우들에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기도 하고. 박근형은 모르겠고 신구는, 연기를 하고 있다기보다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바위에 걸터앉으면 진짜 힘든 거 아닌가 싶고, 조는 연기를 하고 있으면 저러다 진짜 잠드는 거 아닌가 싶고…(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기운 없고 힘겨워 보였다) 다리를 절며 천천히 걸을 때도 그게 그 배우의 현재 모습 같아서 막 불안하고…ㅎ
2부에선 불신(?)이 가시고 ’펼쳐지고 늘어져있던‘ 이야기도 한층 입체성을 띠어 흥미로웠다. 시공간과 기억의 오류 등이 중첩되면서 ’고도를 기다리는 일‘을 넘어선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었고 그게 좋았다.
럭키를 맡은 박정자 님이 ’모자‘를 쓰고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몇 분 혹은 십 분(영화로 치면 롱테이크?)은 유일무이한 어떤 모놀로그를 보는 듯해 전율이 일었다.
예전부터 관심 있었고 보고 싶었던 고도를 기다리며, 이제야 봤고 너무 좋았네.

마지막에 배우들 인사할 때 왠지 울컥. 많은 이들이 기립해 열렬히 감동을 전했다. 영상에, 소리에, 색깔에 현혹되고 자주 사로잡힐 수밖에 세상에서 150분간 무음 무채 무미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이 소중함을 오래오래 잊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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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_재은

1인문화예술공간(운영자 이재은) 글쓰기및소설강좌문의 dimfgo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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